연남동에서 음악과 술에 취하다
나는 유명한 '알쓰'이다. 소주는 2잔에, 생맥주는 반잔만 마셔도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뇌가 알콜에 마비가 된다. 사실 이런 알쓰에게도 하나의 로망이 있으니 바로 혼자 바(BAR)에 가서 칵테일 몇 잔 마시며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알쓰 : '알콜 쓰레기'의 줄인말로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신조어
흔히 바에는 두 가지 즐길거리가 있다고 한다. 바로 '술'과 '음악'.
일단 술은 충분히 즐기기에는 체질이 받쳐주지 않으니 남은 것은 음악 뿐이다.
이제 막 더위가 시작되던 어느 날, EP COFFEE N BAR를 찾았다. 연트럴파크 끝자락까지 열심히 걸어가다가 이제 포기해야 하나 싶었던 때 어디선가 매력적인 사운드가 '여기 바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낮에는 커피, 밤에는 바로 변신하다는 이 곳. 정말 들어가는 순간 '아, 커피를 시키는 것은 어리석운 일이구나. 취하더라도 술을 시키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콜지수를 올려주는 분위기였다.
EP COFFEE N BAR의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업체 관계자의 글을 우연히 읽은 적이 있다.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사장님께서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꼭 보고 디자인을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스탠리 큐브릭의 문제작이자 명작으로 꼽히고 있는 이 영화를 매개로 사장님과 디자이너의 공명이 일어난 결과 지금의 인테리어가 탄생한 것은 아닐까. 잿빛 공간에 노란색, 빨간색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의자, 그리고 조명의 구성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시계태엽 오렌지의 미쟝셴을 조금 닮은 듯 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음악 선곡의 대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었을까 EP COFFEE N BAR는 공간에 음악을 맞추었는지, 음악에 공간을 맞추었는지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딱 떨어지는 독특한 장소였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 다른 업장에서는 바깥의 사운드가 옅게 들리는 정도라면 이 곳에서는 화장실마저 스피커가 배치되어있어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낮이지만 붉게 물든 조명 아래 뱅앨올룹슨 베오플레이 A8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Lo-fi 사운드의 나른거림이란. 알콜 쓰레기인 나도 '여기 마티니 하 잔 주세요'라고 외치게 만들 정도였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여자 혼자 연남동의 바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개인정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끈적이는 사운드부터 부드러운 R&B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선곡 속에서 음악에 취하니 그 없던 용기가 샘솟는게 아닌가.
늦은 오후, 창가에 자리를 잡고 시그니처 칵테일과 함께 수제 티라미스를 시켜서 시간을 보내보자.
하루의 마무리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Editor.브랜드텔러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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