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로스쿨에 입학했는가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공부를 곧잘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시험을 보면 학교에서 다섯 손가락 바깥으로 간 적이 없었다. 그 시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거의 다 '특목고'에 진학을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고, 나 또한 그 관례에 따라 특목고에 진학했다. 강원도 횡성에 위치한 학교를 거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길에 오른 것은 해외 유학반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고,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의 면접에서 '광탈'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름 명망 있는 대학교에서 행복한 학부 공부를 했으니 선방하긴 했다.
그렇지만 왜 내가 로스쿨을, 그것도 한국의 로스쿨에 진학했냐 하면 별다른 이유를 내지 못하겠다. 사법고시를 보는 것보다는 로스쿨에서 변호사 시험을 거치는 것이 조금이나마 더 쉬운 일이라 생각했었던 것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결론, 즉 왜 변호사가 되고 싶은가?라는 물음에는 답하지 못한다. 공부를 늘 잘 해왔고, 한국에서 문과로 공부 좀 한다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각종 고등고시와 학문의 길 정도가 아닌가 해서 로스쿨에 진학했었던 것 같다. 결국 로스쿨에 입학한 것은 '그냥'이다. 갈 수 있었으니까 간 것이다. 아무런 목적의식이 없었다.
로스쿨에 진학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지는 않는다. 로스쿨 시절만 많은 생각을 하고 느끼며, 한층 더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던 내가, 나름의 주제 파악을 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이나마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으려나? 더 힘든 상황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지만, 로스쿨에 입학해 난생처음 느껴보는 학우들의 압도적인 재능이라는 벽에 좌절하고, 그럼에도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절박하게 노력하고, 그곳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하는 과정을 통해 나만의 니치 마켓을 찾아내는 기술을 익혔다. 법학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이 정도면 '그냥'입학한 것 치고는 많은 것들을 배운 것이 아닐까.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로스쿨에서 들었던 단편적인 생각을 갈무리해 정리할 예정이다. '로스쿨 입학 비법'이라던지 '로스쿨에서 살아남기'라던지는 아니다. 입학을 잘한 것도 아닐뿐더러 로스쿨에서의 내 생활은 성공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고칠 점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써보려고 한다. 왜냐고? 이것도 '그냥'이다. 로스쿨에서 확실하게 배운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냥' 맘 내키는 바 행동할 때 의외로 얻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후의 글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거창한 기대는 하지 않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그냥요'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