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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맛 교향곡 Dec 19. 2020

가지 않은 길-[타이탄의 도구들]을 읽고

1.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미국에서 지내던 학부 생활 동안 나를 매료시켰던 스포츠는 사이클링이다. 로드 자전거의 얄쌍한 타이어가 아스팔트 노면과 맞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부터, 속도를 높이면 날 막아섰던 단단하지만 푹신한 바람의 벽까지. 난 자전 타기의 일거수 일투족이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날 설레게 하였던 것은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성취감이었다. 학교 사이클링부에 속해 있었던 약 일년여간의 기간동안 나는 20킬로미터도 허덕이며 타던 초보로부터, 140킬로미터의 코스를 하루에 완주하는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처음 100킬로미터가 넘는 코스를 완주했을 때, 코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Good work today." (널 죽이지 않는 것은 널 강하게 만든다. 오늘 고생했다)




  이 말이 니체의 유명한 격언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은 그로부터 약 십여년이 흐른 후 서른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대하고서였다. 훈련소를 갓 수료한 신병으로써 연대장님의 교육을 청강할 기회가 있었는데, 강의의 말미에 군인의 자세를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위 격언을 언급하신 것이다. 이때에도 10년전의 그날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리버리한 훈련병에서 이등병 계급을 단 군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십여년의 시공간을 가로질러 니체의 격언이 반복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임을 느꼈다. 노력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였던 나와 막 이등병이 된 나는 분명 같은 길의 연장선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성공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성공을 그리지만 그것을 정의하는 벙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혹자는 금전적 가치에서 성공을 보고, 다른 이들은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서 성공을 찾는다. 하지만 개인이 어떻게 정희함과는 상관없이, 성공에는 일정한 요인들이 있기 마련이다. 전술한 나의 두 개의 소소한 성공에는 노력이라는 공통된 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성공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빌 게이츠의 성공에 명확한 이유 하나를 댈 수  없는 것과 같다. 수많은 변인들 속 인과관계는 서로 희석어 그 분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히려 효과적인 방법은 귀납적 추론일 수도 있다. 즉, 여러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한 후, 이들을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로 삼아 나름의 공통되는 교휸을 추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읽은 [타이탄의 도구들]이 제공하는 것이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인 팀 페리스는 자신의 팟케스트 방송인 [팀 페리스 쇼]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타이탄, 즉 거인들)과 수행한 많은 인터뷰를 갈무리해 책을 완성했다. 즉, [타이탄의 도구들]은 말 그대로 성공한 사람들의 밑바탕에 기저하는 성공에의 도구들을 망라해 놓은 책이다. 말하자면 성공의 참고서 격인 셈이다. 이 참고서를 읽으며 내게 든 생각은 안도감과 압도감이었다. 전자는 갈 곳을 잃고 혼란을 겪었던 내가 성공한 사람들과 같은 길을 일정 부분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반면 후자는 아직 내가 걷고 있지 아니하지만, 성공하고 싶다면 걸어야 할 길의 방대함에서 왔다.




  어떤 부분들은 마치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듯 하였다. 가령 '쓰고, 쓰고, 쓰고, 또 써라.' 라는 챕터는 글의 명확성이 곧 사고의 명확성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설파한다. 디지털 시대가 발전하면 할 수록 글을 쓰는 사람이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오늘날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 모두는 말하기와 글쓰게에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p.92) 것이다. 나 또한 철이 들 무렵부터 글쓰기를 갈구해왔다.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있어 일종의 명상적 효과를 가져, 글을 씀으로 말미암아 생각을 정리하고 나아갈 경로를 설정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내가 사랑했던 할머니의 죽음과 변호사시험 탈락의 목전에서 날 지탱해준 것들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많은 타이탄들 또한 글쓰기를 즐긴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나는 안도했던 것이다.




  반면 내가 아직 걷지 아니한 길을 보여주는 대목들도 보였다. '안테암불로가 되어라' 라는 챕터는 겸손의 미덕을 뼈저리게 알려줬다. '안테암불로'는 재력가의 밑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는 뛰어난 예술가 철학자를 뜻하는 말이다. 누구나 타인을 섬기는 자세로부터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타이탄들은 말한다. 비록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을지라도 역설적이게도 타인을 섬기며 타인들의 성공을 위한 도움을 자발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성공을 위한 캔버스 또한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p.141이하) 나는 어찌 살아왔는지를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어릴 때부터 곧잘 해오던 공부로 우쭐하여, 로스쿨에 진학한 뒤, 처음 느껴보는 공부에의 어려움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배우기 보다는 분노하고 절망감만 느끼지 않았던가. 정정당당하게 나보다 더 예리한 실력을 갈고닦은 학우들을 인정하기보다는 시기하고 질투하지만은 않았던가. 내가 만약 타이탄들이 설시하듯 '안테암불로'가 되었었더라면 대학원 시절 비단 얄팍한 지식만이 아닌 훗날 더 큰 도움이 될만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아직 가지 아니한 길에 대한 압도감을 느꼈던 것이다.



3. 가지 않은 길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러한 압도감은 앞으로 마주할 미지가 무수하다는 설렘으로도 느껴질 수 있다. 대문호 프로트는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자신이 걷지 아니한 길에 대하여, 걸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움과 설렘을 느낀다고 서술했다. 이번에 읽은 [타이탄의 도구들]은 내게 아직 가지 않은 방대한 길을 비추어 준 셈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프로스트가 그러했고, 많은 타이탄들이 그러했듯 설레고 노력하는 태도를 견지하고자 한다. 그리고 생각건대 그러한 태도를 연습하고 배우기에 최적의 장소가 바로 부대 안이 아닌가. 무더웠던 7월의 어느날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부터 군대는 내게 있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자대에 배치받고, 이후 근무를 시작한 이래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배울 것과 익숙해질 것들이 많았다. 나름 뛰어나다고 자부해왔던 자신이 초라해 지는 경험도 있었다. 정신적 능력의 고양과 더불어 육체적 능력의 탁월함도 중요함을 배웠다. 비록 늦은 나이이지만 나는 가장 낮은 곳인 이등병부터 시작하는 '안테암불로'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코로나 정국으로 많은 것이 제한되지만, 오히려 이것이 더 높은 경지에 이는 수양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느낀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은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뿐 마음으로 아직 가지 아니한 길을 것고자 한다. 나 또한 타이탄이 되기를 희망하며 말이다.  






  * 본 서평은 국방부가 제고하는 진중문고를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양질의 도서를 장병들에게 제공하는 국방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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