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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Oct 19. 2021

당신의 금고엔 무엇이 들어있나요?

당신의 금고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금고에 넣을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금고에 넣어 놓을 정도라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귀한 것이겠다.


얼마 전, 고향집에 다녀왔다.

안방에 들어갔는데 못 보던 검은색 네모난 보관함 같은게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냐고 물으니 금고를 샀다면서 해맑은 웃음을 짓는 아빠다.

"아니, 금고를 왜 사?" 정말 당황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아 물어본 말이었다. 우리 집엔 딱히 금고에 보관할 만한 것들이 없는데 말이다. "그냥 좋잖아." 아빠만의, 아빠만을 위한 보물상자였을까. 그 금고가 아주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아빠가 좋다면 됐지 뭐.'라고 생각했다.


금고를 열어보니 내가 상상하던 금고 속 모습과는 달랐다.

자신이 평생을 일한 회사에서 준 근속 메달과 여러 뱃지들이 들어있었고 그 밑에는 몇 년 전, 생신선물로 사드린 여전히 새 거 같은 지갑과 내가 초등학생 일 때, 조금씩 돈을 모아 선물했던 문방구 표 싸구려 시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얇은 은색 메탈에 파란 바탕을 지닌 시계였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색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 20년이 지난 시계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아빠,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그럼, 딸이 준 건데."

이내 시계를 꺼내 옷으로 한번 닦아주고는 다시 금고 안에 곱게 넣어놓는 아빠다.

"구경하고 문 잘 닫고 나와." 라고 말하며 방에서 나가는 아빠.

"응, 알았어...." 

아빠가 나간 후, 나는 한참을 그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를 선물하던 날이 기억난다. 검은색 직사각형 박스에 시계를 고이 넣어 예쁜 리본을 달아 주던 그날이. 사실 액세서리를 잘하지 않는 아빠였기에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다른 아저씨들은 하나씩 다 하고 다니는 시계가 아빠 손목에는 없었던 게 어린 마음에도 신경이 쓰였던 거였다. 그리고 초등학생일 그때, 내가 가진 돈에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시계이기도 했다. 

나는 아빠에게 최고는 못하더라도 최선의 것들을 주고 싶었다.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아 이렇게나마 되돌려 주고 싶었지만 아빠는 언제나 헤질까, 닳을까, 아끼고 아꼈다. 꼭 그 물건이 나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끼지 좀 말라니까, 정말....' 

금고 안, 여전히 새 거 같은 지갑과 시계를 보니 속이 상했다. 

근속 메달과 뱃지는 가족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해 온 아빠였음을 증명했다. 좋은 것만 하라고, 이젠 그래도 된다고 말해도 항상 자신보다 가족들을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에 '참, 변하지 않는 사람' 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이젠 '자신을 좀 더 챙겨도 될 텐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이렇듯 아빠의 사랑은 매번 생각지 못한 순간 커다랗게 다가와 마음을 흔들었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아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딸들은 참 욕심이 없어요. 다른 집 자식들 보면 사달라고 하는 것도 많던데 우리 딸들은 사준다고 해도 다 괜찮다고 해요. 그게 어쩔 때는 참 밉다니까요."

그때, 아빠의 말은 충격이었다.

내게 있어 "괜찮다."라는 말은 아빠를 위하는 말이었고 에두른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다.

언제나 딸들을 위하던 아빠가 이제는 자신에게 더 베풀길 바랬으니까. 좋은걸 입고. 먹고, 즐겼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서 아빠의 노후가 조금은 더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했다.

아직은 주제넘은 생각이었을까.

아직은 조금 더 투정 부리고, 조금 더 아빠를 필요로 했어도 됬을까.

어릴 적 아빠 품에 안겨 칭얼거리던 그때처럼.

하지만 아빠는 알고 있음에 분명하다.

아빠가 시계를 아꼈던 것처럼 나 또한 아빠를 위하는 마음에 그랬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다름에도 너무나 닮아있으니까.

사랑의 방식은 다름에도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으니까.


아빠의 금고 속에는 사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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