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가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한 탓도 있었지만 어딘가 가고 싶다는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사실 어딜 갈 수 있는 상황도 형편도 아니기도 했지만 말이다. 먹고, 자고, 일하는 것, 그 이상 할 일은 없었고 좀비처럼 온 집안을 헤집고만 다녔다. 난생처음 해보는 재택근무는 편했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할 필요도 없고 눈치 볼 일도 없이 신경 쓸 거라고는 나 말곤 없었으니까. 하지만 단점이라면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는 점. 가뜩이나 단순했던 일상이 더욱 단조로워져 버렸다는 것뿐이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다.
길가에 세워둔 차가 왠지 불안해 태풍이 오기 전 미리 주차구역으로 옮겨 놓기 위해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부르릉, 부르릉. 밖에 오랜 시간 방치해둔 탓인지 시동소리가 매끄럽지 않다. “오랜만이야 , 밥알아.” 밥알처럼 작고 동그랗다 해서 붙여준 애칭이었다. 간단히 주차만 해놓고 다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차장 너머 밤빛이 예쁘다. 역시 환하고 선명한 낮보다 번진 듯 희미한 밤이 좋다.
시동을 건 김에 드라이브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동소리도 매끄럽지 않았으니 오랜만에 조금 달려주는 것도 밥알이한테 좋을 테니까. 앞, 뒤 유리창을 모두 열고는 노래를 크게 틀었다. 태풍이 오긴 오려는지 약간의 물 냄새가 섞인 바람이 차 안을 온통 뒤덮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들리는 거라곤 노랫소리가 전부다. 예전엔 집에만 있는 친구를 볼 때면 집에만 있으니까 축축 처지고 더 힘이 없어지는 거라며 나가면 달라질 거라고 억지로 끌고 나가던 사람이 바로 나였는데, 어느새 집순이가 되어버린 내가 있다.
사실 집이 편해졌다기보다는 혼자 있는게 편해졌다는게 맞는 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지고, 혼자 먹는 밥이 당연해지고, 혼자서 하는 일이 누군가와 같이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해진 것.
내 나이 서른두 살, 아직 시집도 못 갔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될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날 이렇게 만든 건 코로나 때문이라고 변명도 해봤지만, 나는 훨씬 이전부터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다.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거나 물리적으로 먼 거리 때문에 자주 보기가 힘들어지면서 자연스레 집에 있는 날이 늘어갔다. 퇴근 후, 저녁마다 누군가를 만나 웃고 떠들기 바빴던 시간들이 지금은 집으로 들어와 밀린 집안일을 하고 예전과는 달리 빠르게 지쳐버리는 몸을 쉬게 하기 바쁘다.
이십 대와 삼십 대가 다른 건 외로움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었을까.
혼자여도 괜찮다고, 외롭지만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친구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바라볼 때면 나는 부러운 마음과 동시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할 것만 같은 무서움과 더 이상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긴 할까 하는 두려움. 모두가 자기만의 짝을 만나 서로를 위해 살아갈 때 나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티를 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초라해져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동네에서 소소하게 맥주 한잔 하고 싶은 밤, 휴대폰을 뒤져 봐도 좀처럼 편하게 연락할 사람 찾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영영 혼자 있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썩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외로운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럼 나도 결혼을 하면 외롭지 않을까?
주변 친구들은 이미 결혼도 했고 예쁜 아이들도 키우고 있다. 따듯한 그 모습에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웬만하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 결혼하면 신경 써야 할 것 투성이기만 하지. 혼자가 최고야.” 또는 “지금이라도 나도 혼자 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네가 부러워.”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가 봤을 땐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여전히 내가 혼자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넌 항상 거리를 두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잖아, 그 사람과의 미래에 대해서 말이야.”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은 무엇보다 좋았고 행복했지만 진짜로 우리가 하나가 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함께 한다는 것은 꼭 나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일인 것만 같았다.
함께 한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내어줘야 하는 일인 것만 같았다.
나는 사라지고 우리만 존재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두려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우리의 미래를 그리기도 전에 나는 스케치북을 덮어버렸다.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무서워했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언제나 혼자 있고 싶다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정말로 혼자 남겨져 버리게 될까봐 무서워했다.
어쩌면 혼자 있고 싶다며 여기는 그 마음마저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혼자 있고 싶다고 외쳐도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말라고,
나만의 공간에서 꺼내 달라고.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