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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Apr 14. 2024

의료대란 속 봉합 수술기

[4월 첫째주 일기] 의료대란을 뚫고, 어린이 턱 열세바늘 꿰맨 이야기


    

이번 주말이면 벚꽃이 절정에 이를 것 같았다. 날씨도 따뜻하고, 비 소식도 없으니 주말엔 꼭 꽃놀이를 가야겠다 다짐하고 있었는데, 역시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사건이 터진 건 금요일 저녁. 야근 중인데 전화벨이 울린다. 첫째 아이 봄이 전화다. 받았더니 동생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쳤단다. 그런 일이야 늘 있는 일이니 아이돌보미 선생님께 응급처치 해달라고 전하고, 얼른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다. 둘째 아이인 여름이 턱을 살폈더니 메디폼 안으로 피가 흥건하다. 눈으로 봐서는 어느 정도 깊은 상처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병원부터 가야 할 것 같아서 얼른 검색에 돌입했다. 이럴 때는 역시 맘카페에서 검색해 보는 게 가장 빠르다. 대체로 이 동네에서는 아이가 이마든, 머리든, 턱이든 어딘가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으면 A대학병원이나 소아응급의료센터를 갖춘 B병원에 가는 것으로 좁혀진다.      


아무래도 얼굴에 난 상처다 보니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어야 해서 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애초에 많지 않은 듯했다. 검색 결과, 119에 전화하면 치료 가능한 병원을 안내해 준다는 것과 봉합수술을 하려면 6시간 금식을 해야 하고, 봉합수술은 다친 이후로 24시간 이내에 해야 한다는 점까지 체크하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단 A대학 병원으로 운전해서 가는 길에 혹시나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은 의사가 없어서 병원에 와도 봉합은 안 된다고 한다. 일단 1순위는 진료 불가. 2순위인 B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소아 봉합은 안된다고 했다.       


이쯤 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치긴 어제저녁 7시쯤 다쳤으니, 오늘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꿰매야 한다. 119에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하고, 소아 봉합이 가능한 병원을 물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봉합수술을 해주는 병원을 가려면 서울로 나가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는 환자와 보호자 1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여름이랑 남편을 들여보내고, 나는 봄이와 함께 병원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응급실에 들어간 지 15분 만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꿰매야 하는 상처인데, 여기서는 꿰매줄 수 없다고 했단다. 결국 병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술 가능한 병원이라고 추천해 준 두 곳 중에서 더 가까운 C병원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12시가 다 된 시각, C병원에 도착했더니 여기저기가 찢어진 환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어린이 환자도 많이 눈에 띄었다. 부랴부랴 접수해서 오전 진료가 끝나기 직전에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상처를 보자마자 (체감상 0.1초 만에) 오후에 봉합 수술을 할 거라고 말했다. 다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는 단서도 붙였다. 그래도 일단 저녁이 되기 전에, 이곳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에 안도했다. 오후 수술이 결정되자, 남편과 봄이는 농구교실 수업을 들으러 가고, 나는 여름이와 남아서 수술 준비를 했다. 링거를 맞아야 하는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여름이는 의외로 울지도 않고 씩씩했다. 링거까지 연결한 이후로는 둘이 앉아서 요리 동영상을 보며 ‘맛있겠다! 먹고 싶다!’를 연발하며 지루한 시간을 버텼다.  

    

그렇게 오후 3시가 넘어갔을 즈음, 수술실로 올라오라는 콜이 왔다. 막상 수술실 문 앞에 서니 마음이 급격하게 심란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름이는 의외로 씩씩하게 간호사 선생님과 손을 잡고 수술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엄마랑 같이 들어가겠다며 떼쓰면서 울지도 않고, 드러눕지도 않고 매우 순순히. 아이가 들어간 이후, 나는 수술실 앞에서 멍하니 기다렸다. 창 밖을 바라보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가 후드드득 내렸다.      


30분 정도 지났을 즈음,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상처가 크고 깊어서 열 세 바늘을 꿰맸다고 설명해 주셨다. 다행히 수술은 깨끗하게 잘 됐고, 상처를 손으로 긁거나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곧이어 여름이가 침대째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수면마취에서 깨어나는 중이라 멍한 표정으로 녹색 포대기에 싸여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여름이는 마취에서 깨는 과정에서 어지럼증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잘 이겨냈다. 집에 와서는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컨디션을 점점 회복하기 시작했다. 벚꽃놀이가 예정되어 있었던 주말이 병원 투어하다가 끝났지만, 그럼에도 감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다가 턱이 찢어진 어린이 환자를 데리고, 지금과 같은 의료대란을 뚫고, 24시간 이내에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서 수면마취로 봉합수술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다행한 일이니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병원에 가게 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 여름이는 아기 때 국그릇을 엎어서 화상을 입는 바람에 응급실로 달려간 일부터 4살 무렵, 집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져서 앞니 2개가 생으로 뽑히는 사고까지 다사다난했다. 평소에 조심하라고 입이 아플 정도로 주의를 주는데도 다치는 일이 잦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일에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유치원에서 전화가 걸려와도 “네네~괜찮아요~제가 보고 있을 때도 다쳐요”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번에 여름이의 찢어진 턱을 봉합하기까지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어린이 외상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자체도 많지 않은 데다가 의료 대란까지 겹쳐서 더욱 그랬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아프거나 다쳤을 때 언제든지 병원에 가서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그게 흔들릴 때 얼마나 불안한 지도.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파업이 시작된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정부도, 의사들도 필수의료를 지키겠다는 뜻은 같은 게 아닌가. 서로가 같은 목표를 향해서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얼른 대화에 나설 수 있다면, 그래서 얼른 모두가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믿음은 무너지고, 그만큼 불안이 커질까 봐 두렵다.     


 



주말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수술한 병원이 어디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은 100%... 

아들을 둔 엄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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