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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27. 2023

유재석의 핑계고를 보다가(feat.무빙)

스스로를 잘 아는 지적인 사람이 발산하는 매력

오늘 새벽에 평소보다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깼는데 <무빙> 알고리즘이 나를 <핑계고>로 이끌었고, 어머나 김두식과 이미현, 전계도가 나온다니(거기다 믿고 보는 유느님 아니던가) 이건 꼭 봐야 해라며 바로 보기 시작! 오랜만에 시간 순삭을 경험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 이후로 배우 조인성님을 특히 좋아하지만 같이 출연한 배우 한효주님과 차태현님도 평소에 좋아해서 흥미롭게 봤는데, 친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처럼 잔잔바리로 계속 웃었다. 유쾌한 기운이 내게도 전해지는, 보고 나서도 기분 좋은.


왜 기분이 좋았을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생활의 감각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대화'여서 그랬던 것 같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만이 가진 고유한 아우라와 편안한 매력. 소위 하늘의 별, 스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가 더 어려운 어떤 면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교적 보다 현실적인 일을 하며 살아간다고 해서 모두가 이런 감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나 조차도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나에 대한 지식이나 생활에 대한 감각이 생긴 건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핑계고>, 그리고 최근에 몇 년 만에 펌을 해보겠다고 미용실에 세 시간을 앉아있으면서 읽게 된 잡지들 덕분에 배우 조인성의 생각이나 스타일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는데, 와 조인성은 정말 너무 멋져버리는구나, 하며 특유의 삐뚜름하면서도 바른, 묘한 매력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편안하고 허세를 덜어 낸 여유 있는 모습이 그만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반항적인 미소년 계열을 좋아하던 내게 탑티어였던 조인성이 생활의 감각까지 더해 한층 더 매력적이게 변모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하 참..


비슷한 맥락에서 배우 한효주도 인상 깊었다. 한효주는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 말도 안 되게 예뻐서 그녀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캡처해서 저장하고 싶은 마음으로 봤었는데, 핑계고에서의 편안한 모습도 그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특히 작품의 성적표와 관련한 유재석의 질문에, 예전에는 주연배우로서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오리라는 것도 아니까, 좋은 일이 오면 그때 그 순간 진짜 좋아하고 즐기고 나쁜 일이 오면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느끼려고 한다.'라고 답하는 모습에 놀랐다.


대단한 깨달음처럼 힘을 주어 말하지 않아서 더 와닿았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순간적으로 나 자신을 속이는 순간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 위해 노력 중이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특히 어떤 좋은 일이 불행의 전조가 될까 봐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은연중에 불안해하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그걸 재빠르게 합리화해서 억지로 괜찮다고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습관들.   


한효주의 말에 유재석이 '오히려 이렇게 감정표현을 솔직하게, 내 지금의 상황과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나중에 돌아보면 오히려 나한테 좋은 거 같다'라고 답하고, 이어서 조인성이 '나이 먹어서 참 좋은 건, 이걸 내가 표출할 수 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알기에 내가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말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화들.


자신만의 내면 탐색과 성찰 없이, 그저 나이를 먹어간다는 이유로만 위와 같은 태도가 저절로 흘러나올 수는 없다. 나는 이런 결의 지적인 사람이 좋다. ‘나 자신'에 대해 지적인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해 깨어있고 지속적으로 알아가는 사람.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은 누구보다도 매력적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는 채로 오래 살아왔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나름 탐구하다 보니 모든 일에 앞서 그게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야 내 생활의 중심이 잡히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건강한 뿌리에서 피어난다.


이런 과정 속에 있다 보니 제 옷을 입은 듯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며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들'만이 갖는 편안함과 여유가 가장 빛나 보인다. 저 사람에게도 오로지 자신만의 어둡고 깊은 시간과 분투가 있었겠구나, 그 시간이 자신만의 모양과 색깔로 빚어지면 저렇게 매력적이구나하고 말이다.


사람은 변한다. 시간 앞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자신에 대한 깨달음도 계속해서 변해가고 나 자신도 변해간다. 땅에 단단히 두 발을 디딘 채 생활의 감각을 유지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고 진실되게 살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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