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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4. 2024

검색창과 길티플레져

사람들은 검색창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오늘 연예면 메인 화면에 뜬 기사를 익숙한 손놀림으로 클릭했다. 기사 말미에 ‘이에 대중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올해 본 기사들에서 자주 만난 문장이다.  


그 기사를 읽은 나는 정말 피로했나? 검색하지 않아도 메인화면에 뜨는 그 모든 기사들에 난 정말 피곤했을까? 얘 또야?라고 하면서도 '새로운 소식'을 묘하게 반가워하며 클릭한 건 아니었을까? 조금씩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확인하고 관련 검색어를 입력해 보기도 하며 오히려 그 피로감을 묘하게 쫓고 있지는 않았나.


올해 연예면에는 어떤 큰 이슈들이 있었을까. 한창 핫한 스타들의 열애와 sns, 엔터 업계 내에서의 소송 이슈, 연예인 부부들의 이혼 이슈, 그 외에도 소위 유명인의 말실수나 사건사고 등 여전히 많은 이슈가 현재 진행 중이다.  


대중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문장을 마지막에 붙인 기사들은 정작 제목을 클릭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루가 멀다 하고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생산한다. 뭐 새로울 일은 아니다. 무료한 일상에 끊임없이 제공되는 안주거리로서의 기사들.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이나 추측을 댓글로 확인하며 내 생각과 비교해 보고, 결코 알 수 없을 ‘실체적 진실'을 나름대로 상상한다. 내가 그렇게 확인하는 정보들이 혹시 모를 미래의 나의 어떤 상황을 대비하는데 과연 유용할까. 그걸 알고 싶고 궁금해하는 마음의 출처는 무엇일까. 자극적인 이야기 자체에 중독된 것일까, 아니면 찰나의 지루함도 참지 못하고 무언가를 클릭하는 현대인의 단면인 것일까.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인상 깊은 대사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람들은 검색창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는 내용의 대사였다. 검색창 앞에서 드러나는 나의 민낯은 가십거리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모습이다. 누군가의 추락을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뜨거운 감자거리인 기사가 없으면 온 세상이 다 조용하고 심심한 기분이 든다. 기사를 보며 어떤 입장에 따라 억울해하다가 화도 내다 답답해한다. 어쩌다 친구와 얘기하게 되면 서로 맞장구치며 공감하기도 하고,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통해 서로의 어떤 면을 다시 발견하거나 안심하기도 한다. 상황의 전개를 따라가며 역시 나의 추측이 맞았는지 아니면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숨겨져 있었는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을 보며 혼자 훈수를 두기도 하고 인간의 저 밑바닥까지 만천하에 드러나도 되는 건지 저 사람은 괜찮을까 혼자 겁내하기도 한다. 쓰다 보니 이야기 중독과 도파민 중독 둘 다 인 것 같다. 자극적인 갈등의 이야기를 수시로 새로고침한다.


분명한 건 굳이 검색까지 해가며 타인의 말실수, 고통을 업데이트하고 있는 나 자신이다. 남의 치부를 꽤나 춈춈하게 소비하는 내가 찝찝하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판단하며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대응을 자세하게 살피며 누가 진짜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파악하려 들지만 진실이라는 것을 끝내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모든 이야기의 전말을 내가 알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하루의 자투리 시간은 이를 파악하려는 노력 속에 지나간다.


어쩌면 세상은 연예기사면을 보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뉠지도 모른다. 정말 피로하면 안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안 보고 싶어도 보이니까 피로하다고 할 수 있다. 연예면에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수상 소식이나 새로운 행보, 아니면 기부 같은 아름다운 소식만 보고 싶을 수도 혹은 호감형 연예인들 사이의 커피차 우정 같은 훈훈한 소식만 보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지금의 나는 '솔직히' 그렇지 않다. 때로 검색까지 해가면서 최신의 소식을 찾아보는 것이 그 방증이다. 나는 날마다 국지성 호우처럼 쏟아지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아 여기저기 떠다니고 있다. 이는 사실 내게 해롭다. 타인이 오해받거나 비난받는 과정을 보면서, 그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동일시하며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스스로 검열하기 때문이다. 남을 끊임없이 판단하면서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내 모습은 정작 도덕적이지 않다


더군다나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무엇보다 어떤 이야기도 현실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기사를 통해 전달될 수는 없다. 그걸 망각하고 타인의 치부나 고통을 섣불리 판단하며 우위를 느끼는 나의 태도는 자극적인 기사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구현한다. 분노하고 욕하며 그런 기사들을 더 쫓게 되고, 정작 관심이 필요한 일들에는 무관심해진다.


나는 값싼 즐거움을 얻으면서 나 자신을 소모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서로 흉보며 비판하고 감시하는 풍조에 일조하고 있다. 그 시선은 결국 나를 향해 돌아올 것이다. 이 유해한 플레져를 그만두고 진짜로 생각이 필요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검색창 앞에서 솔직한 나 자신의 모습이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모습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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