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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꼬마 Dec 30. 2020

연애가 처음인 게 죄는 아니잖아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2>를 보고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2> 포스터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아마 지금의 넷플릭스를 있게 해준 영화라고 믿는 작품이다. 상당히 긴 제목을 가졌지만 개봉 당시 여러 매체에 많이 노출된 덕분에 빠르게 친숙해질 수 있었던 영화다. 하지만 주인공의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발단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내 시청 욕구를 자극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수능을 마쳤다는 설렘으로 학생도, 학교도 모두 행복에 차 있을 때 한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1편을 보게 되었고, 덕분에 지금 내가 2편의 감상문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2>는 2020년 2월에 개봉했다. 내가 1편을 본 것이 2019년 12월 쯤이었으니 이미 그때도 곧 2편이 개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치심에 물들어 영화를 편하게 보지 못할 거라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미국 하이틴 특유의 설렘과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을 가진 여자 주인공 덕분에 곳곳에 숨겨진 한국적 요소를 찾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고, 나는 '2편이 나오면 곧바로 봐야지'라고 당시 굳게 다짐했었다. 하지만 거의 일 년이라는 공백을 두고 내가 이 영화를 시청한 이유는 2편에 대한 상당한 혹평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듯 1편에 대한 설렘도, 2편에 대한 두려움도 모두 희미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자 2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결론부터 말하라고 하면 나는 재미있었다. 물론 1편과 2편의 재미를 저울질하라고 한다면 1편 쪽으로 좀 더 기울 것 같긴 하다. 서사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들이 1편에 훨씬 많기 때문이다. 2편은 분위기가 진지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하이틴 로맨스 장르라는 이름에 비해 설레는 장면이 적다. 1편이 오로지 라라 진(라나 콘도르)과 피터(노아 센티네오)의 알콩달콩 연애 시작 스토리였다면 2편은 그녀의 성장기 느낌이다. 연애가 처음인 라라 진이 '연애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왜 연애가 힘든 것인지', '연애에서 잘못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인지' 등 초보 연애러들이 하고 있을 만한 연애의 고민들을 모두 해준다. 특히 ‘난 남자친구가 생기면 다른 남자는 아예 생각이 안 나는 줄 알았다.’라는 대사가 이 영화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모든 내용을 함축한다. 새로운 서브 남자 주인공의 등장으로 라라 진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기 때문에 라라 진 위주의 신들이 많고, 피터의 출연이 비교적 적다. 만약 1편과 같이 설레는 둘의 케미를 보길 원한다면 초반 부분 이후부터는 조금 실망할 수 있다.



  2편에 등장하는 존 앰브로즈(조단 피셔)라는 새로운 서브 남주는 1편에서 라라 진이 보내지 않을 연애 편지를 썼던 5명 중 한 명이다. 문제는 그 아이도 라라 진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 이보다 더 큰 문제를 뽑자면 그 아이가 상당히 괜찮은 아이라는 것이다. 착하고, 매너 있고, 솔직하고, 배려심이 깊다. 이런 존이 라라 진을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해주니 라라 진 입장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라라 진은 피터의 전 여자친구인 젠에게 피터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피터랑 함께 있을 때 모든 것이 신경 쓰이면서 피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한 존에게 마음이 끌린 것이다. 자신이 피터를 좋아하고 있지만 존도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라라 진은 혼란에 빠진다. 이런 마음이 가능한 것인지 하루종일 고민한다. 결국 싸우고 헤어지기까지 하지만 다시금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피터에게로 돌아간다.



  여기서 포인트는 이 모든 성장 과정에서 라라 진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1편에서 라라 진의 지지자 역할을 했던 마고 언니(자넬 패리쉬)도 2편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2편에서 현명한 멘토로 새롭게 등장한 스토미 할머니(홀랜드 테일러)도 혼란스러운 라라 진에게 큰 도움을 줄 것처럼 등장했지만 라라 진의 마인드에 큰 전환점이 될 만한 조언을 주지도 않는다. 자신이 피터를 왜 그렇게 불편해했는지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된 것도 자신이 밤새워 고민한 덕분이었고, 둘 중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아챈 것도 결국은 자신이었다. 스토미 할머니라는 캐릭터를 새로 생성해낸 것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기는 하나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마인드에 큰 영향을 주는 멘토 캐릭터를 크게 선호하지 않아서 이런 독자적인 깨달음의 노선을 선택한 라라 진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스토미 할머니가 맹물 같은 캐릭터였던 것은 아니다. 주인공의 서사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닌 가끔만 등장해서 치고 빠지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다. 무엇보다도 스토미 할머니는 인간적으로도 쿨하고 멋있는 사람으로 표현이 됐다. 주변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절대적인 라라 진의 서포터이며, 모든 상황에서 그럴 수 있다고 응원만이 가득한 사람이다. 라라 진이 피터와 헤어진 후 자신의 감정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중 존과 키스를 하게 되는데 그 키스를 통해 라라 진은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피터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사실에 너무나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낀 라라 진은 존과의 자리에서 벗어나다가 스토미 할머니와 마주치고,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여기서 스토미 할머니가 하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다.


존 앰브로즈 & 라라 진


“우리 키스했어요. 그런데 전… 다른 사람을 떠올렸어요. 제가 전부 망친 것 같아요.”

“아니야.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는구나. 엉뚱한 남자한테 키스도 해 봐야 뭐가 맞는지 알 때도 있어. 난 그랬거든.”


  미국이라서 가능한 말인지, 스토미 할머니라서 가능한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라라 진에게는 최고의 응원과 위로가 아니었을까. 이제 막 자신의 마음을 알아챈 청춘의 성장을 격려해주는 스토미 할머니스러운 말이 내가 훗날 라라 진과 같은 혼란스러움을 겪을 때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아마 저 말은 ‘난 남자친구가 생기면 다른 남자는 아예 생각이 안 나는 줄 알았다.’고 라라 진과 같이 생각한 많은 연애 초보들이 자신의 마음에 죄책감을 가질 때 ‘다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양다리를 응원해준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라라 진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한국인이라면 멈칫할만한 장면들이 다수 존재한다. 1편에서는 ‘한국식 요거트 스무디’라고 표현되는 요구르트나 ‘한국 마스크’라고 표현되는 마스크팩이 그렇다. 2편에서는 라라 진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콘셉트가 더 잘 드러난다.

  라라 진 가족이 ‘설날’을 챙기러 한복을 입고 외갓댁에 가서 세배를 하는 장면이 가장 대표적이다. 거기서 할머니는 정확한 한국어로 ‘예쁘네~ 공부 잘해~’ 라며 세뱃돈을 챙겨주는 등의 모습이 보여진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던 나는 무의식을 뚫고 갑자기 들어오는 한국어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후 잡채나 전 등으로 채워진 식탁을 보여주는 등 한국의 명절을 배경으로 했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 애썼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라라 진이 어색해 보인다, 끼워 맞춘 것 같다 등 혹평도 존재했지만 나는 타 영화에서 드러나는 한국의 이미지보다는 더 한국의 모습에 가까운 것 같아서 좋은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일 신기했던 부분은 앞에서 말한 갑자기 무의식을 뚫고 들어오는 한국말처럼 갑자기 무의식을 뚫고 들어온 영화의 음악이었다. 바로 국내 걸그룹인 블랙핑크의 노래 <Kill this love>. 음악 듣는 귀가 정말 토종적이라 평소 음악 순위에 있는 국내 음악밖에 안 듣는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전주가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약간 믿기지 않았으며, 영화에 다른 BGM을 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비록 영어로 된 가사만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그 익숙한 전주가 귀에 꽂히던 순간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한국 단어가 하나 있다. ‘정’이라는 거다. 두 사람 사이에 끊어질 수 없는 연결을 말한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어도 그 사람을 향한 애정이 마음속에 늘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라라 진이 하는 대사 중 하나다. ‘정’이 큰 범위로 쓰일 때는 모르는 사람과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아마 ‘정이 들었다’라는 말속 ‘정’의 의미를 설명한 것 같다. 이 자막이 밑에 나올 때 괜히 찌릿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했다. ‘정’이라는 단어를 말로 정의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한국인들만이 아는 그 ‘정’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저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딱딱하게 보여서 ‘정’과는 전혀 다른 단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저런 단어를 외국 영화에서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정’이라는 단어와 느낌에 대해서 알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2편을 좋아하는 친구가 그닥 많지는 않았다. 아직 보지 않은 친구들은 내 간단한 리뷰를 듣고 보지 않아야겠다고 말하기도 해서 내 리뷰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이다. 아무래도 1편에 대한 설렘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기대를 안겨주었기 때문에 약간은 다른 내용을 담은 2편이 보다 못한 만족감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 같아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재밌고 설레는 영화였으나 많은 대중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은데, 3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3편은 부디 나의 진입장벽 낮은 영화 만족감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의 영화 만족감마저도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다. 파이팅.



*사진 출처 : 영화 공식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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