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웰슬리 학생은 능숙하게 살림과 공부를 병행해왔다. 우린 요리를 하며 동시에 숙제를 할 수 있다. 이제 여성 해방을 외칠 땐 지났다. 진정 여성이 해야 할 일은 가정을 굳건히 지키며 전통을 계승할 아이를 낳는 것. (중략) 그녀의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은 여성의 타고난 역할을 위협한다.’
영화 속에서 캐서린 교수(줄리아 로버츠)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글을 보고 ‘여성의 타고난 역할’이라는 말에 대해 화를 낸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타고나야 하는 역할. 캐서린 교수가 나타나기 전까지 웰슬리 학생들은 학교에서 그걸 배우고 있었다.
그녀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을 학교에서 배운다. 물리학, 외국어, 문학, 미술 등. 그리고 우리와 다른 것도 배운다. 위에서 언급한 살림을 잘하는 법, 남편을 잘 보조하는 법, 좋은 아내 혹은 엄마가 되는 법. 퍽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그들은 이를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웰슬리 학생인 베티(커스틴 던스트)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걸 눈치채고 친정으로 가서 엄마와 이렇게 대화한다.
“(남편은) 뉴욕에 갔죠, 일하러.”
“남잔 열심히 일해야지.”
“모른 척 마세요. 거짓말인 것 알잖아요.”
“돌아가서 화장 고치고 남편을 기다려. 결혼은 거래란다. 참고 살아.”
“이젠 집에서 잠도 못 자요?”
“스펜서(남편-조던 브리지스) 집이 네 집이야.”
베티는 피임교육을 하는 교사 아만다(줄리엣 스티븐슨)를 프리섹스주의자로 몰아 학교에서 쫓아낼 만큼 보수적인 전통주의자다. 그녀가 왜 그렇게 커왔는지는 학교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저 대화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우리가 교육을 받고 사회화를 겪는 곳은 단순히 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학교를 가기 전 아주 기본적인 교육을 집에서 받고 학교로 향한다. 더구나 학교에서도 저러한 것을 가르치니 그녀들의 꿈은 자연스레 ‘현모양처’ 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녀들은 자신의 꿈보다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게 더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꿈과 포부는 그러한 성공적인 인생에 방해가 된다고 배우며 자라왔다.
그런 그녀들에게 다가온 것은 ‘노처녀’라고 불릴 만큼 어리지 않은 미혼 여성인 캐서린 교수. 그녀는 기혼 여성은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인정해주는 학교의 관습을 믿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학생에게 잘 출석하지 않으면 낙제라며 엄포를 놓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본인의 진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도 준다. 보수적인 옛 미술만을 가르치던 학교에서 현대미술을 가르치기도 하고 웰슬리의 ‘현모양처 양성 교육’의 틀을 부시려 노력한다. 그녀는 극 중 이렇게 소리친다.
“나는 미래의 지도자를 키워내고 싶었어요. 그들의 부인이 아니라!”
가장 인상깊었다고 생각한 대사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여성교육의 표본이라고 생각된다. 웰슬리 학교에서는 그 어떤 여성에게도 지도자가 되라고, 최고의 위치에 서도록 성장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녀들은 본인이 아니라 남편을 그렇게 만들기 위한 현명한 부인이 되도록 교육받는다. 여성은 왜 그 주체가 될 수 없었는가. 왜 누구도 주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가. 여긴 너무 틀에 박혔다고 불평하는 캐서린 교수의 말에 “스스로 생각하는 노력을 덜어주죠.”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빌 교수(도미닉 웨스트). 우린 여기서 교육의 힘과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던 베티는 캐서린 교수 덕분이었는지 자신을 옭아매던 결혼과 출산이라는 임무, 그리고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탈피하려 노력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 없이 이미 사돈과 좋게 넘어가기로 결정했다며 남편에게 전화라도 한 통하라고 요구하는 엄마에게 모나리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걸 봐요. 웃고 있어요. 이 여잔 행복할까? 행복해 보이면 그걸로 된 건가? 잘 들어요, 엄마. 보여지는 게 다 진실은 아냐.”
이 말에서 <모나리자 스마일>의 제목이 담고자 했던 의미가 드러난다. 베티는 재력가의 남편과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화려한 결혼식을 치렀다. 그리고 애써 웃으며 행복해 보이려고 애썼다. 학교에서 교육받은 바로 그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행복해야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깨닫고 말았다. 보여지는 것만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행복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인정하고 만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타고나야 할 역할은 없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성으로써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자가 되거나 그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거나. 우린 자신이 어떤 성이라는 이유로 그중 하나를 자연스레 선택해야 할 의무를 지니지 않는다.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맘껏 꿈꾸고 될 수 있으며, 서포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 또한 맘껏 꿈꾸고 될 수 있다. 물론 현모양처 또한 그러하고. 극 중 웰슬리 학생인 조앤(줄리아 스타일즈)이 그랬듯이. 자신의 성에 따른 선택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방향이다.
‘나의 선생님, 캐서린 왓슨은 자신의 길을 고집하며 웰슬리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난 이 마지막 사설을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던 아주 특별한 여성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