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영화의 줄거리를 대략 설명하는 소개 글을 읽고 나는 이 영화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과거로 가서 과거의 한 여자를 사랑하다니. 어설픈 판타지 영화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명성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를 틀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꽤 오랫동안 파리의 광경들이 나온다. 모두가 꿈꾸는 유럽여행의 정석. 그런 모습들이 ‘파리는 아름다운 곳입니다’라고 우리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첫 대사와 함께 나온 그 장면. 나는 그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에 빠지게 된 것 같다. 예술을 좋아한다, 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모를 수 없는 그 화가, 모네. 그의 그림이 그 장면에서 아름다운 영상미로 드러났다. 그 장면은 이 영화가 예술성을 담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명확히 드러냈다.
주인공 길(오웬 윌슨)을 그런 예술성이 흘러넘치는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는 그렇지 못해 친구들과 놀러 간 사이 길은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걷기 위해 돌아다니다 우연히 한 차를 타게 된다. 그 차는 길이 그렇게 사랑하던 1920년대의 파리로 그를 데려다주었고 길은 본인이 동경하던 거장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그리하여 그는 매일 밤마다 그 차를 타고 1920년대로 가 그곳에서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길은 1920년대에서 아드리아나와 함께 또 189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고, 길처럼 언제나 과거를 동경하던 아드리아나는 그 시대를 떠나지 않고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길은 결국 모두 과거를 동경하고 살지만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시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을 자각하고 현재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아드리아나와 헤어진 길은 현재로 돌아와 잘 맞지 않는 약혼녀와 파혼하고 본인이 사랑하는 순간을 살게 되는 내용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가 영화를 보기 전 읽었던 줄거리를 누가 썼는지 궁금해졌다. 파리의 아름다움과 과거 거장의 위대함을 담은 이 영화가 단지 과거의 한 여자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로만 표현되는 것이 마음 아팠다. 아니면 혹시 그런 예상치 못할 이야기 안에서 은근슬쩍하게 드러나는 파리의 아름다움과 과거 거장들의 모습을 다루기 위해 반전을 주고자 일부러 그런 줄거리를 선택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모네의 그림이 실사로 눈에 보이고 난 후 조금 잔잔하던 내 감정선에 또다시 파동을 일으킨 부분은 길이 과거로 가 처음 만난 그 부부의 이름이 소개되는 그 순간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입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순간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바로 <위대한 개츠비>. 두근거렸다. 우연히 인사를 했는데 그 사람이 스콧 피츠제럴드라니. 여기서부터 나는 이 영화의 흐름을 눈치챘다. 앞으로 이 사람과 같은 수많은 거장이 저렇게 일반 행인인 것처럼 등장해 길과 대화를 나누겠지, 위대한 예술가로서라기보다 한 시대를 지내는 한 사람으로 등장하겠지, 스콧의 등장부터 나는 1920년대의 장면 중 단 하나의 장면도 허투루 볼 수가 없었다. 1920년대가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과 낭만의 시대였던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노는 그 순간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달리”
본인을 계속 저 두 글자로만 소개하는 괴짜 같은 양반이 등장했을 때도 매우 흥분했다. 살바도르 달리. 중고등학교 미술책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흘러내리는 시계 그림의 주인공. 그 주인공이 길에게 말을 걸며 수다를 떨다니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웃음이 났다. 이 외에 ‘고갱’과 ‘드가’가 나타났을 때도(좀 더 오래 출연했더라면 좋았을 걸 싶다) 나는 마치 길이 된 것 같이 신기해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가장 큰 설렘을 가져다주었던 부분은 따로 있다.
“헤밍웨이.”
가장 두근거렸던 장면이다. 대단한 거장으로만 바라보던 사람이 술집에 앉아 편안하게 술을 마시며 자신을 소개하는 저 모습이 너무나도 친근하고 더 멋있게 느껴져서 마치 내가 헤밍웨이와 이야기하는 길이 된 기분이었다. 헤밍웨이라는 저 네 글자가 내 감정에 그렇게 크나큰 동요를 줄 수 있다니. 순간 말문을 잃은 길의 모습이 거의 내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길거리 행인처럼 만나는 거장이라니. 내가 길이었으면 거기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대화도 거의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과거는 가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다.’, ‘현재가 가장 소중하다.’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저런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을 쓴 것이겠지만 그 교훈에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로스트 제너레이션 거장들과의 만남은 강렬했다.‘스콧 피츠제럴드’, ‘살바도르 달리’,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 영화가 아니라면 언제 다시 이들과 대화를 나눠볼 수 있겠는가. 과거를 꿈꿔본 적은 없지만 만약 내가 로스트 제너레이션에 파리에서 살 수 있었더라면 저들과 주인공 길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약 30년 뒤쯤에는 2020년대가 최고의 황금시대였다고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