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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통 Aug 06. 2024

이병률의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를 읽고

나는 지금, 여행에 관한 또 다른 책을 고르고 있습니다


작가는 시인입니다. 하지만 그의 시집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의 시는 시집으로 읽은 적이 당연히 없습니다. 에세이 속에서 시를 만난 것이 전부입니다. 머리가 좋지 않아 이해력 또한 떨어지는 나로서는 시는 형이하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별로 읽히질 않습니다. 한 방에 와닿는 시를 좋아한다는 의미를 말함입니다.

이번에 작가의 읽었으니 그의 책으로서는 세번째 작품입니다. 처음에 읽었던 작품이 <끌림>이었습니다. 작가의 에세이가 여행 글이라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도 읽었습니다. 그 후로도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들었지만, ‘후속 작품이 나왔네!’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그의 여행 글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라는 작품이 나왔다 하길래 냉큼 주문했습니다. 그의 글은 산문이지만, 당연히 시 쪽에 더 가깝습니다. 가끔 형이상학적인 단어들의 배열로 ‘읽다’라기 보다 ‘눈으로 보고 생각하다’라는 곱의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책을 한 번에 읽지 않습니다.

침대 옆 협탁에 두고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 나의 하루 일과는 샤워로 마감짓습니다 - 침대 위에 올라 쿠션으로 허리를 받치고 책을 집어 듭니다. 가방에 넣어 다니는 책이 있으니 복수의 책 읽기인데, 침대 독서는 집중력을 높여줍니다. 밤에 침묵 때문일 겁니다. 대신 책을 읽는 시간이 짧습니다. 이 책의 끝장을 덮기까지 기간이 오래 걸렸다는 뜻입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는 글들이긴 한데, 글의 일각은 늘 ‘사랑’입니다. 시인이 여행기를 쓰고, 그 글의 근저가 사랑입니다. 어떤가요? 신기하면서도, 글의 언저리가 왠지 격한 감정으로 와닿을 것 같지 않은가요!

나는 이 대목에서 대폭발을 하고 말았습니다. ‘불꽃이 몸에 박히는 작은 통증’이라는 제목의 산문인데, 폭발을 일으킨 대목은 이렇습니다.

사랑일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필름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지 못하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필름을 끼워줄 구 있느냐고 묻던 몽파르나스역 광장의 소녀도, 내 배낭이 열린 걸 보고 아까부터 말해주고 싶었는데 망설였다던 사람에게 “이거 지퍼가 고장나서 그래요”라고 대답해주었던 브뤼주의 좋았던 그 날들도, 내가 흘린 장갑 한 짝을 들고 집에 서서, 내가 장갑을 흘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혹시 되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그때까지 기다려줬던 베를린의 루이사도, 불꽃이었으며 사랑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디. _187쪽

폭발의 이유는 사랑과 여행의 절묘한 통합 때문입니다. 식사를 거르면서 하는 여행은 즐겁지 않듯이, 여행할 때 따라오는 어떤 ‘결핍’은 그것은 현지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랑 -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풍광이든 - 의 조각들로 비로소 여행이 완성되어가는 거잖아요!

왜 당신은 다를까. 언젠가 내가 사랑한 사람과 왜 다를까. 왜 모빌처럼, 내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맴맴 도는 것만 같을까. 우리는 왜 우연히 같은 계단에서 계속 마주치는 걸까. 그 계단에는 자판기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어서 버튼만 누르면 당신이 나타나는 걸까. 당신은 어디서 온 걸까. _209쪽 ‘사랑은 사다리 타기인가 파도타기인가’ 중에서.

작가의 글은 때로는 그냥 호흡 소리에 묻히기도 하고, 어떤 글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하고, 또 어떤 글은 호흡을 멈추게도 합니다. 

작가는 책 속에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일 년 뒤 갑자기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금 당신의 삶의 방식 중 어떤 걸 바꿀건가요? 왜죠?’라고. 그리고선 이렇게 답을 내놓습니다.

일 년 뒤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사랑의 감각을 더 열어놓겠습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라고 노래한 정호승 시인의 말씀이 시상 참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두 단어를 조합하면 인생이라는 생명력에 몰두하게 해주는 아우라가 생기는 듯 해요. 온 힘을 다해 지켜야 하는 것에 그 생명력을 쓰게끔 자극을 주죠.

네, 사랑하다가 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간단할 것 같습니다. ‘죽을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보다 열 배 살아있는 말이고 스무 배쯤 말이 되는 말이니까요. _216쪽 ‘전화를 걸기 전에 뭐라고 말할지 연습해본 적이 있나요’ 중에서.

나라면, 이런 질문을 나에게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기로 정했습니다. 

‘그 순간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을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그리고 몸에 백팩을 하나 걸치고 바로 떠나겠습니다. 도착지는 정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것으로 발걸음을 향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음과 발걸음이 일치하는 곳을 다니다보면 원없이 여행 같은 삶을 살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내가 있는 그곳에서, 내가 알고 있는 그대들에게 행복하다는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렇게하면 내가 없더라도 그대들은 ‘그로부터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는 지금, 여행에 관한 또 다른 책을 고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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