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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딩북 Jan 28. 2019

Scene2. 서른에 시작한 서울생활 _확신의 시간

웨딩북 매거진 『 이대로 결혼해도 괜찮을까 』



Jessie   X   웨딩북

웨딩북 웨거진 에세이

"이대로 결혼해도 괜찮을까?"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무엇부터 준비해야할 지 모르는 예신들에게

옆집 언니이자 결혼 선배의 마음으로 이야기합니다.

웨거진 에세이 '이대로 결혼해도 괜찮을까?'는 매 주 1회 업로드 됩니다.




호주의 그 모든 시간들을 남겨두고 돌아왔다. 나의 선택을 ‘답’으로 만들지 못한 채 말이다. 

29살의 마지막 겨울이었다. 


 가족도 등지고 떠났던 내가 그 남자의 말 한마디에 호주의 모든 삶을 놓고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마음 한 켠이 답답해지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떳떳할 수 없고 할아버지가 돌아 가셔도 귀국할 비행기 삯조차 없는 주머니 사정에 나는 모두가 그렇게 갈망하는 지구의 배꼽 울룰루 한 켠에서 남몰래 울고 있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며 호기롭게 떠난 호주에서 정작 나는 행복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SNS에서는 멋있어 보이는 일이었지만 어쩌면 나는 보여지는 모습과 현실의 괴리에 몸살을 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회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이따금 오가는 대표와의 거칠었던 시간은 서로의 바닥을 보이는 일이었으며 나는 하고 싶은 일과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몇 년 동안 저울질하며 조금씩 스스로를 갉아 먹던 중이었다. 오랜 몸살을 앓던 내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월급을 받던 그 프로젝트에서 그를 만난 일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나 온 그 어떤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남자였다. 4년간의 호주에서 그와 함께한 건 고작 6개월의 시간이었을 뿐인데 나는 그 6개월 동안 지난 3년 동안 채 해내지 못한 일들을 해나갔다. 운전을 배웠고,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웠으며, 모닥불을 피우고, 한 밤 중에 국립공원에 누워 별을 보는 낭만을 배웠다. 그는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듯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자존감을 지키지 못하는 그 일과 당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차가운 이야기를 건냈다. 뼛속까지 추워오는 겨울날, 우리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순대국밥 한 그릇을 각자 앞에 두고 한 술도 뜨지 못한 채 들었던 이야기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일이었으며 삶이 흔들리는 일 그리고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는 덤덤하게 본인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서울대 입구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을 흘러 가야지만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10여분을 날카로운 언덕배기를 올라야 존재하던 고시원 방 한칸에서 하루 한 끼, 라면을 네 등분으로 나눠 나온 그 작은 한 조각으로 끼니를 이어가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한참을 말없이 울었다. 세상도 모른 채 천둥 벌거숭이로 살아오던 내가 부모님이 양말의 구멍 하나, 속옷 하나 기워가며 모은 돈을 보이스피싱으로 날려버린 일도, 스스로의 자존감을 잃은 채 느리게 퇴색되어 가던 내 눈의 반짝 거림도 그의 입을 통하자 선명한 하나의 칼날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 


너는 잘 될거야 라는 말 뒤에 갇혀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는 잃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장소에 있다고 내가 특별해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는 불쌍한 단역배우였다. 그래서 나는 4년의 시간을 넘어 비로소 뒤늦은 한국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추운 한 겨울에 방을 구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무엇이었다. 부모님께 채 전하지 못한 2천만원이라는 마음의 빚을 안고 300만원으로 시작한 삶은 얼마나 추웠는지 여전히 나는 잊지 못한다. 쏟아지는 함박눈과 칼바람을 맞서며 방을 보러 다니던 일은 그리고 얼어 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포장마차에 들어가 우동 한 그릇, 소주 한 병을 놓고 그래도 괜찮다고 서로를 다독이던 일은 그 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 다다음해의 겨울에도 선명하게 남았다. 삶의 가장 자리에서 써내려 간 글 하나가 공모전에 당선되며 그의 회사에서 빌린 300만원의 빚을 갚던 일은 우리에게 얼마나 눈물겨운 시간이었는지, 비좁은 비탈길을 떠나 신대방역 단칸방에 나란히 앉아 먹던 된장찌개의 맛이 얼마나 깊었을지는 그와 나만이 아는 오롯한 감정이었다. 


굳이 어려운 선택을 하는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사랑은 결국 돈에 의해 변색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과 전우애로 완고해지는 사랑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안다. ‘삶’이라는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사랑이 필요하고 그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측은지심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세상의 잣대에 갇혀 나를 위한 희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나를 더 많이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고,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자 내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를 닮아가는 내 모습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서로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먼 여정을 함께 걸어오며 그와 결혼하게 될거라고 확신했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소리 없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를 안다. 서른에 시작한 사회생활의 거듭된 실패와 삶의 낙오 속에서도 그는 나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주었다. 여전히 겨울이면 패딩 하나로 추위를 이겨내는 그는 올 겨울에도 내 옷과 신발 하나를 사들고 왔다. “오빠 옷은 언제 사?” 라는 내 말에 그는 언제나 “남자는 아무거나 입어도 괜찮아" 라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하나도 괜찮지 않은 내 마음과 그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의 괜찮다는 말을 들으며 가끔 삶에 지쳐 잠든 그의 등이 아빠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겨울이 깊어가는 어느 날 자그맣게 울었다. 그의 등을 안고 이젠 내가 더 잘할게 하고 다짐했다. 


난 여전히 울룰루를 지난 사막 어딘가에서 만난 별똥별이 당신을 나에게 데려다 주었을 거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Jessie   X   웨딩북

웨딩북 웨거진 에세이

"이대로 결혼해도 괜찮을까?"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무엇부터 준비해야할 지 모르는 예신들에게

옆집 언니이자 결혼 선배의 마음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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