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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온도 Oct 31. 2018

꼰대에 대하여

나 때는 말이야... 내가 왕년에는 어?

스무 살이 되던 해, 12시 땡! 하자마자 단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던 민증을 들고 클럽 입구 앞에서 서성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나는 이제 낡아가는 민증을 꺼내들 일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 아니 정말 이러다가 내 얼굴처럼 생긴 어린 친구가 술 먹으러 오면 어떡하려고 내 민증 검사를 안 해?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은 그럴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가 주름은, 사람의 나이테가 맞는 것 같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유독 어두운 조명을 가진 술집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민증을 보여달라 한 적이 있긴 했었다. 정말 신이 나서 다급한 손길로 민증을 내밀고 아르바이트생이 차분하게 민증을 받아 든 것 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헛! 앗! 어! 하더니 우리한테 죄송합니다. 하며 사과했다. 그래 이럴 바엔 그냥 보여달란 말 하지 마라. 사과 왜 해... 뭔데... 그때 이후로 그 술집 근처도 가지 않음은 물론 아르바이트생들이 민증 보여달라고 할 때 조금 멈칫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놀랄까 봐...


그래, 나는 나이가 들었다.


이런 말을 하면 언니, 오빠들이 니 나이는 한창이라며 미간을 찌푸린다만 나는 이제 인정을 해야 한다. 한창은 그래 맞다. 하지만 어리진 않다.


내 나이를 자각할 즘에 꼰대력 테스트(http://issue.chosun.com/poll/quiz_article.html?type=O&id=178)가 잠깐 유행했었다. 내가 너만 했을 때라는 말을 한다.라는 항목이라던가 아무리 둘러봐도 나보다 더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라는 항목은 나는 아니겠지, 꼰대 그거! 내 이야긴 아니겠지! 외면하던 나에게 명치를 때리며 이래도? 이래도 네가 꼰대가 아니야?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꼰대 :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이다.


단순 업무 방향을 제시하던가, 본인 사상을 충고하던가 하는 류 말고 뭐 '으어디 감히 과장한테 말대꾸를 해!'라던가 'XXX야!' 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꼰대라고 하지 않고 또 저러네, 의 '또'를 따라 미친놈이라고 부르고 있다.



꼰대라니. 내가, 꼰대라니! 의사 양반! 

사실은 꼰대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던 세월이 한 3년? 하지만 작년 겨울을 기준으로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꼰대다. 


어린 후배들에게 막 인상을 쓰게 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색한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그 '꼰대'다.


꼰대를 인정하며 꼰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본 적 있었다. 나 역시 꼰대 앞에 서면 작아지고 꼰대 등 뒤에 서면 내 미간이 좁혀지던 시절이 있었다.(사실 지금도 그럼) 나 때는 말이야, 와 내가 네 나이로 돌아간다면.으로 시작하는 (아마 그때 본인들은 좋은 충고라고 생각했을) 이야기들은 사실상 마이동풍이었다. 제대로 귀에 얹힌 적 없었다.


어린 시절, 상사의 그런 나도 니 나이 때 그랬는데, 내가 네 나이로 돌아간다면 스킬에 조곤조곤, 흔히 말하는 말대답을 하던 사람이었다. 대리님, 저는 대리님이 말씀하신 그런 지름길보다는 한 계단 한 계단 제가 부딪혀 알아가고 싶다고. 어린 제가 엉뚱한 길로 가면 그 길을 걸었던 대리님이 봤을 땐 답답해 보이실 수 있지만 그냥 지켜봐 달라고. (고집 세다고 한 소리 들었다.)


그랬던 내가, 사회생활 햇수로 10년이 넘어가니 20살 솜뭉치들만 보면 자꾸 입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야.. 도망가.. 일하지 말고 빚내서 놀아.. 돈은 평생 버는데 노는 건 평생 못 놀거든.. 20대 후반만 돼도 노는 거에 눈치가 동반돼... 내 딴엔 충고인데 어린 친구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노는데 드는 돈은 네가 줄거니?' 대답은 '아니, 미안.'


비슷한 시절에 본인의 꼰대 키워드를 인정한 언니와 대화한 적 있었다. 나의 기본과 그 어린 친구들의 기본은 한 참 텀이 있더라. 나는 상사가 나한테 잘못을 지적하면 죄송합니다부터 나오는데, 어린 친구들은 변명부터 하더라 그런 흔한 이야기부터 지가 한 실수 짚었더니 본인이 안 했다고 발을 빼더라 나 때는 상사가 실수를 잘 못 지적해도 알아보겠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부터 나왔는데 본인 기억 안 난다고 안 했다고 하더라. 뭐 그런 이야기까지. 


자. 이쯤 되면 왜 우리는 꼰대가 되는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짧게 생각해본 바는 이렇다. 나에겐 기본 예의인 것이 후배들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점에서 발생한다. 메일을 쓸 때 안녕하세요 ㅇㅇ님, ㅇㅇ팀 ㅇㅇ입니다.라는 말을 필수적으로 쓰는 게 예의라 생각하는데, 후배들은 업무내용이 딱히 있는 게 아닌데 그걸 꼭 써야 하나. 할 말이 없는데? 혹은 업무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내가 생각할 땐 이렇게 하면 더 빠르다고 이야기하면 후배의 마음은 이렇다는 거다. '네가 하덩가 냅두덩가 이 꼰대야'


사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우리도 신입일 때가 있었고, 우리도 꼰대를 욕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업무 알려주는 건 고맙다만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진행해서 속도 느려지면 그 욕은 누가 다 먹나, 후배가 다 먹는다. 커피? 선배 꺼 타 줄 수 있다. 근데 잡일 다 시켜서 그거 해놓고 간신히 시간 내서 탕비실 왔는데, 탱탱 놀다가 들어와서 커피 타 달라고 하면 내가 커피 타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 나도 겪었던 마음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꼰대가 되어버린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이렇게 하면 더 나은 데, 이렇게 행동해야 다른 사람이 욕을 안 할 텐데! 그게 무슨 잡일이야, 당연히 해야 하는 업무지!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다만 내가 함께하는 팀원들한테 그 정도 충고도 못하나! 귀한 이야기를 해주는 건데! 그리고 어? 관심 없으면 이야기도 안 해!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안 하는 게 좋다.이다. 물어보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황금 같은 충고라도 입을 닫는 게 좋다. 그런 황금 같은 충고가 나만 걔한테 해줄 것 같나, 아니다. 내게 황금 같은 이야기가 걔에게도 황금일 것 같나. 눈 앞에 보석이 번쩍여도 엇, 모래알이 반짝이는 군. 모래알... 추억은 모래알 같지.. 손에 남는 것이 마음에 남은 것 마냥... 하, 나란 감성적인 사람. 하는 게 사람이다. 똑같은 이야기여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도로 와 닿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이상 중간관리직을 맡고 있어 후배들에겐 꼰대로 취급받고 꼰대에겐 머리 아픈 요즘애들로 취급받는 게 억울해 꼰대에 대하여 구구절절 적어보았다. 이건 절대적인 결론은 아니다. 우리는 정말 다양하고 후배도, 선배도 모두 다양하니 말이다. 다만 선배들은 본인이 하는 일이 꼰대질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후배들에게 하는 충고를 좀 줄이고 후배들도 꼰대라고 덮어놓고 대화를 끊지 말고 저 사람도 저렇게 된대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 그래도 사무실 분위기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짧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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