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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온도 Nov 16. 2018

완벽주의자? 실수 포비아?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나라도 실수하면 죽을 듯 스트레스를 받는 나.

직장인들은 다양한 병을 앓고 있다. 뭐 허리디스크나 손목터널 증후군같이 본격적인 의학 질병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넵병이라던지 말하기 싫어 증, 상사가 싫은 상사병 같은 것들 말이다.


그중에 내가 앓고 있는 병이 있는데 실수가 하나라도 발견이 되면 죽을 듯 스트레스받고, 나에게 너무 엄격한 것. 겉으로 봤을 땐 완벽주의자와 혼동할 수 있으나 속까지 들여다봤을 땐 아니다. 완벽주의자는 본인이 완벽하다고 느끼기 전까지 결과물을 내지 않는 것이고 나는 그냥 내고 실수를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작업 하나 할 때마다 내가 못 챙긴 이슈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렇게 무능해 보일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 다 실수하며 사는데 나는 내가 하는 실수가 정말 너무 사소해서 자꾸 자책하게 된다. 그렇게 실수를 하면 다음에는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지 저번에 했던 실수를 알뜰하게도 챙겨 이번에도 또 한다. 이게 내가 나를 완벽주의자로 칭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다. 내가 완벽주의자 일리 없다. 그딴 결과물을 '음, 완벽하군!' 하고 제출했을 턱이 없다.


그리고는 자꾸 남을 선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도 실수를 하며 살 텐데 남을 보며 '나는 정말 쓰레기다.'라고 생각하고 나를 자꾸 갉아먹는다.


나는 이런 나를 이렇게 칭한다. '실수 포비아'라고.


실수에 대한 공포증은 아마, 내가 초년생 시절 인쇄디자인을 했을 때였기 싶다. 실수로 점철된 인간이 인쇄라고 해서 실수를 안하진 않는 법, 내가 실수 한 번 할 때마다 몇십이, 크게는 몇천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 당장에 자리를 반납하고 떠나왔더랬다. (그리고 웹으로 넘어와 오조억 번의 수정을 하고 있다.)


아마 그때 실수 공포증이 생겼고 지금도 작은 실수 하나에도 마음에 추를 단 듯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 추는 예상컨대 1톤은 족히 넘을 것이다. 아니고선 이렇게 무거울 리 없으니까.


나는 왜, '실수 포비아'가 되었을까.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듣기 힘든 말은 아마, 칭찬일 것이다. 그냥 잘했어! 가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잘하고 있어! 하고 등을 두드림 받는 것. 초년생을 지나 직급이 달리고 밑에 후배들이 생기니 그 말은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더, 실수에 대해 예민해지는 것 같다. 잘하는 것 맞나, 내 위치에 이 정도 실수는 아무도 안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역시 무능력한 게 맞나. 이렇게 자꾸 땅을 파다 결국엔 나를 탓하는 것이다.


맞아, 너는 무능력해.

맞아. 네가 그럼 그렇지 뭐.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인데, 나는 나에게 자꾸 그런 말을 한다. 무능력하다, 일을 못한다.

이게 건강하지 않은 상태의 자기 비하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수렁에 빠지고 난 후로부터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우리 모두 알고는 있다. 생각보다는 그렇게 일을 못하는 편이 아닌 것도. 이게 작은 실수라는 것도. 그냥 수정해서 보내면 그만이라는 것도. (사실 진짜 일 못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모른다. 왜? 그게 일을 못하는 건 줄도 모르니까. 오히려 본인들은 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서로 자신에게 조금의 아량을 배풀자.


괜찮다, 다음에 잘 하면 된다.


사실 회사에서 엄청 큰 일이라고 해봤자 일개 사원직급들이 칠 수 있는 사고는 별로 없다. 아마 팀장, 부장쯤은 되어야 사고를 쳤을 때 수습하기 힘들지 몰라도 우리 사회는 얽히고 얽혀 있어 한명의 사고가 그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물론 막내 하나 잘못 들였다가 회사가 문을 닫았더라. 같은 괴담과 우리는 살고 있지만 사실 까놓고 보면 막내가 사고칠동안 커버쳐줄 상사가 없었던 것도 문제, 막내에게 회사가 망할정도로 중책을 맡긴것도 문제다. 그러니 너무 본인에게 엄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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