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살롱 Mar 09. 2022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으로 일해야 할까?

-  인생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일 고르기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 기획하고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장사를 하는 분들에겐 “재료 원가도 안 들고 재고도 없고 얼마나 좋아요?”라는 말을 간혹 듣는다. 비슷한 업인 방송작가 친구도 가끔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원가 안 드는 일이라 쉽게 생각하고 재능기부하라는 말을 만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하는 어르신이 있었다. 책을 내고 싶어 하셔서 기획회의마다 불려 가 여러 의견을 제안했는데 이건 재능기부가 아니고 뭐였지? 그건 내 시간과 노동이 아니고 뭐였지? 마음속으로 표지 디자인 잡는 것 정도는 도와드려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아니, 책 한 권을 재능기부로 그냥 편집해달라는 것이었다. 도리어 '안 되겠다, 표지 디자인도 관여하면 안 되겠다'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재능기부입니다." 모임엔 차관급을 역임한 전직 고위 공무원분들이 무보수로 참여하고 계셨다. 그러나 내 처지는 영 다르지 않은가?! 돈 버는 일만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고, 비싼 대학원은 내돈내산이고, 은퇴 준비는 멀었고, 여러분 같은 연금도 없는데요? 이제 갓 내 일을 해보려는 개인사업자는 적절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어떤 사람과 일할 것인가

마흔에 은퇴한다는 파이어족은 애초에 글렀다. 그리고 우리 일이라는 게 남이 봤을 때는 저게 노는 건가 일하는 건가 싶게 일과 취미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는 일이 재미있고 할 수 있으면 길게 일하고 싶다. 나이가 무색하게 현장에서 예민한 감각으로 일하는 선배분을 보면 항상 멋져 보이고 리스펙트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지속 가능하게 밥벌이를 하며 살고 싶다.

일이라는 게 100% 즐거울 수도 없고, 힘들거나 싫은 상황도 필연적으로 만난다.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흥미를 잃지 않고 성취감을 느끼며 하려면 일을 고르는 기준이 필요하다. 나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선택해야 할 일의 3가지 조건을 정하고, 그중 2가지가 충족이 되면 그 일을 하기로 결정하는 편이다.


재미, 돈, 관계


첫 번째가 재미인 이유는 원체 재미가 이끄는 삶을 살아온 인생이라, 재미있다고 느껴야만 일에 임하는 태도와 동력이 끝까지 유지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건 결과물의 퀄리티와 직결되는 포인트다.

그리고, 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과 건강이라는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같은 수고를 요하는 일이라면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미룬다.

마지막, 관계. 프리랜서, 1인 기업, 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모두가 ‘관계’ 때문에 하는 일은 늘 포트폴리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함으로써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그 거래처와 앞으로 재미있고 돈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는 일은 여간해선 만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재미가 있으려면 내게 주도권이 쥐어져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돈이 크면 상대의 주도권이 크고 내 주도권이 작기 때문이다. 물론 GD나 BTS 같은 스타급 아티스트라면 주도권을 100% 쥐고 큰돈을 벌 수 있겠지만. 일반인의 범주에서 그간 회사 안팎으로 쌓은 경력에서 얻은 내 노하우는 이거다. 한 건축가 분도 재미가 그다지 없겠다 싶은 의뢰가 들어오면 돈을 ‘씨게’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그 견적을 수용하면 그 금액이 동기부여가 되어 끝까지 완성도를 올릴 수 있다고. 클라이언트 베이스 잡이라면 어느 정도 비슷한 속성일 터. 재미가 돈이 되고, 돈이 재미가 되고, 그래서 그다음 관계가 이어지고 그런 거지. 솔직히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더라도 이 셋 중 둘은 충족해야 미래에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



어떤 사람으로 일할 것인가

그러면 나 자신은 어떤 사람으로서 일해야 할까? 이건 광고회사에서 협력사 선정을 반복하며 원칙이 생겼다. 프로젝트를 매니징 하는 AE 입장에서 내가 일을 맡겼던 곳. 이것도 3가지 조건이 있다.


스피드, 퀄리티, 애티튜드


빠르거나, 결과물이 뛰어나거나, 함께 일하는 파트너십이 좋은 곳. 경험상 매우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닌 이상은 3가지 중 2가지를 만족하는 회사면 돌발변수가 생겨도 어떻게든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 가끔 꼭 3가지를 다 충족하는 회사와 일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회사는 드물다. 있다 해도 이때는 상대도 일의 난이도를 알기 때문에 서비스에 맞는 견적을 제시해온다. 그리고, 마치고 나면 그 금액이 결과적으로는 합리적이어서 종종 놀라곤 한다. 역시 베테랑 대표들의 연륜이란!

그렇다면 나라는 브랜드 ‘OOO’ 상품을 팔 때, 상대가 무엇 때문에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위의 3가지 조건 중 무엇이 나의 강점일까? 이때 고민할 것 것이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란 나는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아는 판단 능력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나는 과연 알고 있나? 이걸 아는 것에서 시작해 모르는 부분을 보완해서 더 나아질 계획을 세우고 실행함으로써 사람은 성장하는 것이다.

남이 봤을 때 이 사람은 사업보다 교육에 더 소질이 있는데 계속 사업만 한다, 이 사람은 홀로 소화하기에 너무 큰 일을 덜컥 맡아 늘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 이런 경우가 왕왕 있다. 반대로 고음은 못 내지만 자신이 낼 수 있는 음역대 안에서 듣기 좋은 노래를 소화하는 가수나, 연기력이 그렇게 출중한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에게 친근하면서도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는 평을 들을 만한 배역을 매번 잘 골라 호평을 듣는 배우가 있다. 양은 어느 순간 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활동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실력파가 되어있기도 하다. 이런 케이스를 볼 때면 자신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메타인지 능력의 차이가 느껴진다.

결국 지속 가능하게 일하고 싶다면 나를 아는 게 우선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메타인지에 꽂혀 있었다. 반드시 2가지는 충족시키는 브랜드이기 위해, 나는 무엇을 잘하고 어떤 걸 할 때 재미있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 때 시너지가 나는지 고민했다. 난 스피드는 몰라도 퀄리티와 애티튜드는 꼭 높게 유지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나를 잘 팔고 싶다? 자기객관화와 메타인지. 지속 가능하게 일하려면 꼭 필요한 두 가지 선행작업이다. 그러고 나서 나의 특장점, 시장에서 나를 살 이유를 정리해보는 게 순서다.



어떤 사람을 걸러야 할까

자, 이러면 자연스럽게 걸러야 하는 일의 기준은 나왔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나 회사일수록 돈 문제에 깔끔하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 5천 달러가 넘는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 처리가 말끔하지 않은 곳이라면 확률상 재미로도 성장성으로도 그다지 좋은 곳은 아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거니까' 재능기부를 요구한다면 걸러야 한다. 좋은 뜻으로 할지 안 할지는 내가 정하는 거지,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닌데. 요즘은 숨고니 크몽이니 각자의 별난 잔재주까지 내다 팔 수 있는 재능마켓 플랫폼도 잘 되어 있다. 말하자면 재능의 환금성도 높아지고 시장도 넓어진 것이다. 이런 재능을 누구 맘대로 기부하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일 년에 적어도 한 건씩은 재능기부로 일하는 편인 것 같다. 물론 앞의 기준으로 따졌을 때 재미가 있어서 또는 관계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 선택한 경우다. 돈은 어떻게 돌려 말해도 돈이고 이제 열정만으로 일할 나이도 아닌걸. 한참 유행하던 영화 제목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나 ‘재능기부 같은 소리 하고 있네’나 동의어다. 모양은 같고 부르는 말만 세 가지다. 경력 없으면 열정페이, 경력 있으면 재능기부, 강요하면 노동착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