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함과 오지랖으로부터의 자유
너도, 아기 낳으면 똑같을거야.
그 말이 싫었다. - 거슬러 올라가면 '결혼 하면 너도 똑같을거야', 라는 말도 정말 싫었다 -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하고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사람들의 흔한 반응이었다. 나는 아이들한테 장난감을 사주기보다는 많이 놀아주고 대화할 것이고, 또 아침저녁으로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고, 또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고싶다며 한껏 들떠서 얘기했었거든. 하지만 이 말은 제법 맹랑하게 들렸을까. 이미 아이를 몇 키워 본 경험이 있다거나 주변에서 육아하는 모습을 본 (꽤 많은) 사람들은 나도 결국 '비슷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빙긋 웃었다. 뭐, 내 말에 관심을 가져 준 사람도 몇 있긴 했지만, 아주 소수였고, 오히려 결혼도 육아도 안 해본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영어유치원, 온갖 학습교구, 집안 가득 쌓아올려질 장난감. 눈을 감고 그 모습을 그리니 영 달갑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느낌의 물건들이 우리 집안을 채우면 나는 아마 물 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답답할 것 같아. 임신하고 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요리조리 시청했던 육아의 고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흔한 가정 이미지가 가장 크게 느껴졌기에 거부감이 더 들었던 것도 같지만, 공간과 물건 뿐 아니라 삶과 시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공간, 나의 여백, 나의 휴식에 마구잡이로 던져 넣은 잡동사니 장난감처럼 어지러운 느낌은 기대되기보다는 겁이 났다.
스물 여섯 무렵부터 나는 정말 아기를 갖고 싶었다. (그 때는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아기를 낳고 싶다고 하자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 '결혼부터 하는 게 어떻겠냐'라는 조언을 할 정도였다.) 왠지 아기를 낳아서 기르며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산다는 것, 그러니까 육체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게 된 것인지, 관계는 무엇인지, 성장하는 것, 변화하고 달라지고 행복하고 울고 웃는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작은 생명체 안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뭐 결혼을 하고 당장 아이를 낳고 싶다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짝을 찾는데 그로부터 4년이 더 걸렸고, 그렇게 원하던 대로 결혼과 동시에 아기가 생겼다. 사실 처음엔 신혼생활을 맘껏 즐기지 못했다는 서운함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경험하게 될 놀라운 일들에 뒤로 밀려 금세 아쉬움을 잊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다. 세상에 없던 사람이 내 안에서 나왔다는 것, 어란처럼 꼭꼭 곱씹을수록 미묘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몇 번이나 말했다. 가끔은 너무 신비롭고 황홀해서 눈물이 났으니까.
정말, 정말 신기하지 않아?
아기 낳으면 너도 똑같을거야, 라는 말에 별다른 악의가 없다는 것은 잘 안다. 분명 대중적인 공감을 얻는 집단 지성에는 그 나름의 힘이 있으니까. 다들 좋으니까 좋았다고 표현하는 것이고, 유용했으니 유용했다고 말하는 것이며, 요령 있는 방법이었으니 꼭 참고하라고 하는 작은 애정의 표시다. 대체로 이것들은 선량하다.
하지만 나는 비뚤어진 마음을 타고 태어났을까,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하니 괜히 더 심술이 났다. 쓸데없고, 불필요하며, 그것들이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늘 제도와 관습에 환멸을 느껴 온 까닭이리라. 여기서 말하기엔 이야기가 길지만,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오고가는 물건부터 흔히 챙기는 관습과 의식까지 단단한 마음으로 다 무시해 버렸으니까. 육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깔려 있었다. 경험하지 않았으니 선험적이고, 그래서 직관으로밖에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보통,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엄마는 집에 물건들을 준비한다. 나는 별 물건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 흔한 젖병세제도 집에 갖춰 놓지 않아서 병원을 나와 집으로 온 첫 날은 동분서주 하기는 했지. 하지만 돌이켜 보니, 그렇게 함으로써 정말 '필요한 것'만 집안에 들일 수 있었다. 반 년이 넘게 아기를 키우고 나니, '출산용품 준비물 리스트'라는 것에 더욱 환멸감이 생겼다. 그 중에 정말로 필요한 거, 몇 개 없어.
물건도, 삶의 방식도,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는 기준점도 엄마와 아기가 맟춰 나가기 나름이다. 대체로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기저귀 같은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물건이 필요할 때 사지 못해 고생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필요를 느끼기 전에, 두려움으로 물건을 산다. 누구나 처음으로 아기를 낳고 처음으로 낯선 과제에 맞서기 때문에 누군가의 경험은, 그리고 쓰임새 있어 보이도록 설계된 물건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아이의 학습과 성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원하는 교육, 아이가 정말 관심을 두는 것을 개발해 주기 전에 엄마의 두려움으로 억지 교육을 시킨다. 아이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노력으로 아이에게 장난감을 주고 한 발짝 여유를 찾기를 원한다.
하지만 분명, 다른 방법과 대안이 있다. 집안을 미니멀하게 유지하고 가꾸는 법에 대한 글은 참 많은데, 이 사회에서 아이 그리고 육아에 대해서는 미니멀리즘이 아직은 먼 길 같다. '다들 이 정도는 하는데...'라는 두려움에 대해, 내가 한 마디 힘을 싣고 싶다. 정보가 다소 부족해서 겪는 손해보다 내가 아기와 함께 부딪쳐 나가는 고군분투 그 자체가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계속 시간을 내야지, 꼭 나의 마음을 적어 봐야지, 하고 신년을 기다리다가 거의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늦지 않게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다. 되도록 적게 소유하고 적게 참고하는 하나의 '참조하기 어려운 사례'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