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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준 Aug 25. 2022

# 원리원칙을 지키는 꽉막힌 사람들에 대해

버스를 탔다. 멀리서 한 여성분이 걸어오고 있었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가 출발했다. 얼마 안가 버스는 신호에 걸렸고 그 여성분이 버스로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 버스 기사분은 손짓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명했다. 여성분은 어이없다는 듯 기분 나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는 듯 보였다. 아마 육두문자가 아니었을까.


버스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니 승객의 입장으로서는 '한 번 태워줄 수도 있는데 왜 저렇게 냉정하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알기론 원칙적으로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의 승하차는 불가능하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버스기사님은 원칙을 지켰을 뿐이다. 그게 원래 맞는 거고.


원칙을 따르는 게 맞지만, 눈앞에서 버스를 놓친 그 여성분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약속시간이 임박했을지도 모르는데 또 몇 십분을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되니까. 원칙주의자인 버스기사님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는데 웬걸, 지금까지 만난 버스기사님 중 누구보다 친절하고 안전하게 운행을 하셨다.


버스가 출발할 때는 '천천히 속도를 높이니 서둘러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는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 멘트를 해주셨다. 아마도 우리가 거의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버스운전기사의 교과서적인 정석이 아니었을까.


원리원칙주의자는 무조건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일까. 상황마다 바뀌는 예외 조항이 있을 거라면 애초에 그건 원리와 원칙이 아니다. 원리원칙을 지키는 건 당연하지만, 당연한 것만큼 지키기 어려운 건 없다. 융통성이 다소 부족할 순 있겠지만, 원리와 원칙에 근거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게 유지될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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