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아파트 현관에 들어 서니 생선 굽는 냄새가 났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두툼한 갈치를 팬에 구울 때 나는 고소한 냄새였다. 어느 집에서 저녁 반찬으로 생선구이를 먹는가 보다. 겨울비 내리는 저녁, 갓 지은 밥에 갈치 한 토막, 호박을 듬뿍 넣은 된장찌개와 참기름을 많이 두른 시금치 무침이 차려진 저녁 밥상이 상상되었다.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혹시나 남편이 생선을 굽는 것은 아닐까 기대가 되었다.
나는 이십 대에 구몬 학습지 교사를 1년여 한 적이 있다. 쌍문동 연립주택 단지에 사는 고만고만한 서민들이 주된 나의 고객이었다. 아이들 공부방이 따로 있는 경우가 드물어서 학습지도는 보통 방이나 부엌에 밥상을 펴거나 식탁에서 했다. 어떤 곳은 작은 가게 뒤에 붙어 있는 단칸방이거나 가내 수공업을 하는 방의 구석으로 그나마 밥상조차 펼치기 어려울 정도로 좁았다.
대개의 학부모들은 나를 깍듯이 선생님 대접을 하면서, “아이고 집이 어지러워서 어쩝니까? 어서 들어오세요”하며 환대했다. 부랴부랴 방에 널려 있는 옷가지와 잡동사니를 치우고, 오렌지 주스 한잔이라도 대접하려고 애썼다. 반 지하 방이거나 서향을 마주한, 좁고 어두운 방에서 아이와 마주 앉아 한주 숙제를 점검하고 새 숙제를 내주었다. 나의 일터가 남의 방이나 부엌 한 구석인 셈이었다.
어둡고, 좁고, 초라하다고 할 수 있던 그 방들이 나에게는 이상하리 만큼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아이와 식구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풍경을 꽤나 자주 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가가호호 방문하는 학습지 교사의 일은 오후 늦게부터 시작된다. 하루에 십여 집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한집에서 20분 이상 머물기가 어려운 팍팍한 스케줄이었다. 방문 일정을 잡다 보면 저녁 식사 시간과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방문하는 집 앞에 도착하면, 그 집 현관을 열기도 전에 김치찌개 냄새가, 생선구이 냄새가 나를 먼저 반기며 허기를 불렀다. 어머니들은 내가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선생님 저녁 안 드셨죠? 우리랑 저녁 같이 먹고 시작하세요”라며 허물없이 저녁 식탁으로 나를 초대했다. 한 집에서 오래 머물면 다음 집 방문이 연쇄적으로 지연되기 때문에 선뜻 식탁에 앉을 수 없어서 군침만 삼키며 정중히 사양하곤 했다. “저는 그동안 학습지 채점하고 있을게요. 천천히 저녁 드세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내가 방 한편에서 아이가 해 놓은 학습지를 확인하고 있는 동안 식탁에서는 젓가락, 숟가락의 달그락 소리가 들렸고, 아이에게 “빨리 먹어라. 선생님 기다리신다”며 재촉하는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도 들렸다. 학습지를 채점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리 고단한 하루를 보냈더라도 새 밥을 지어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면 그 하루는 꽤나 괜찮게 느껴지지 않을까. 사랑하는 이들과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세상의 산해진미가 부러울까. 오랜 자취 생활로 집밥이 그리운 나는 그렇게 식구들의 둘러앉은 밥상을 마냥 부럽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지켜보았다. 지금도 주택가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느껴지면 가난하던 젊은 시절 쌍문동에서 학습지 교사를 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오늘 저녁 아파트 현관에서 맡았던 생선구이 냄새는 우리 집 것이 아니었지만, 남편이 여러 종류의 나물을 넣은 비빔밥과 두부 북엇국을 끊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손 씻고 옷 갈아입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게 차려진 저녁 밥상. 소박하지만 가장 맛있는 저녁 밥상이었다. 오래전 내 생각이 맞았다. 나를 위해 차려진 저녁 밥상 덕분에 오늘 하루가 다 괜찮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