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씨에게
삼십 대 때 오십이 되면 퇴직할 거라는 선언을 자주 했었다. 그때는 오십이 이렇게 빨리 도래할 줄 상상하지 못했고(왜 아니겠어?), 퇴직 이후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어느새 오십이 되고 보니, 퇴직은 커녕 하루하루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직장생활이 힘겹고, 지겹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경제적 문제도 걱정이지만, 은퇴 이후 삶에 대한 구상도 빈곤하다. 학교 졸업하고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하며 살았고, 내 삶의 많은 기쁨과 슬픔이 일 안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일터에서 20년을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은 나의 벗이고 이웃이다. 퇴직은 경제 활동의 종료라는 의미를 넘어 생의 많은 것을 지탱해 주던, 애틋한 것과도, 고약한 것과도 이별을 뜻한다. 그런 것들이 사라진 삶이란 내게 미지의 세계이고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하필 호기심과 모험심 레벨이 가장 낮을 때 떠나야 하는 여정이다. 생각하면 불안하고, 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도널드 홀, 동아시아)’은 명석하고 유쾌하고, 신체적 매력과 누구나 부러워할 학력, 유명세를 누렸던 미국의 계관시인 도널드 홀이 80세 넘어 (그는 89세로 2018년도에 사망했다) 쓴 말년의 에세이이다.
도널드는 파킨슨 병 진단으로 운전도 할 수 없게 되었고(미국 생활에서 운전은 필수다), 담뱃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집에 불을 낼 뻔하고, 거실에서 화장실을 걸어가다 낙상을 당하게 된 자신의 처지를 죽는 것보다 사는 게 걱정이라고 말한다. 온종일 혼자 앉아 창밖으로 백 년도 더 된 헛간을 바라보고 담배를 피우고 글을 쓰고 잠을 잔다. 허무하고 쓸쓸할 법도 한데, 페이지마다 독자를 웃게 하는 담백한 위트가 담겨있다. 어쩔 거야. 젊어서 죽지 않았으니 노년의 행운을 즐길 수밖에. 그런데 있지, 상당히 불편한 건 사실이야, 라며 자조나 회한 대신 조금 투덜거릴 뿐이다. 퇴직 후에 나도 도널드 홀처럼 투덜거리며 삶을 이어가면 되겠구나, 하는 안심을 주는 책이다.
“퇴직 후에 뭘 할 거예요? “ 질문을 해본 적은 많지만 대답해 본 적은 없던 질문을 받았다. 퇴직 씨, 은퇴 씨가 갑자기 등을 툭 치며 “나 여기 있거든” 배시시 웃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한번 무시하고 그 질문을 지혜로운 내 친구들이게 돌렸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그 어떤 말도 가능하다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J는 퇴직하고 남편이 나고 자란 바닷가 마을로 내려가고 싶다고 했다. 농담처럼, 작은 가게를 월세로 얻어 국숫집을 해보겠다고 한다. 맛있고 저렴한 국수를 팔며 사람들은 만나고 싶단다. 아이가 없는 이 부부에게 은퇴 후의 삶은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다. 지금 사는 서울의 집을 팔아서 바닷가 앞에 저렴한 집을 한 채 사고 여유자금과 연금으로 생활한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섭섭한 마음에 월세 내기 바쁠 것이고 바닷가 마을 외롭기만 할 거라고 말해 주었다. J가 서울을 떠난다고 말하니 나는 우선 섭섭한 마음부터 들었다. 은퇴하면 근처에 살면서 하루가 멀다고 볼 줄 알았는데, 기차 타면 금방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자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고, 어디까지 계획에 불과한데도 영영 이별하는 듯 슬퍼졌다. 공연히 내 친구를 자기 고향으로 가자고 꼬신 J의 남편이 미워질 지경이다.
T는 조금 더 외로운 말을 했다. “요즘 가장 효녀는 이혼했다 돌아온, 전문직에서 일하는 딸 이래..” 웃자고 하는 이야기였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는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고, 그 속도만큼 딸에게 의지하는 것이 느껴진다. 퇴직 이후에 삶은 결국 부모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일 게다. 급여의 반을 부모와 형제들을 위해 쓰고 있다고 고백하는 비혼 친구들을 여럿 보았다. 부모님을 위해 시간과 급여를 나누는 일이 계속되어, 당연 시 되는 것 같을 때는 사춘기 소녀처럼 비뚤어지고 싶어 진다고 했다. 나는 안다. 그 친구들 대부분은 절대로 삐뚤어지지 못할 성정이라는 것. 그녀들은 부모에게 너무 좋은 딸이라서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B는 늘 그렇듯 지혜롭고 조금 더 관조적인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 부모가 너무 가난한 탓에,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던 시절을 거쳤고, 유학하는 동안싸구려 호텔에서 전전긍긍하던 경험을 말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안한지 몰라. 나는 지금처럼,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다 어떻게 될 거로 생각해.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데, 준비한다고 어차피 뜻대로 될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 당장 기거할 방을 구하지 못했을 때, 불안한 마음이나 달래 보려고 아빠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는데, 보태 줄 형편이 못 되는 당신은 까맣게 속을 태우다가,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고 했다. “그때 생각하면 뭐든 다 어떻게 잘 될 것 같아. 그 시절을 건너온 힘으로 산다면 말이야.”
아직 사십 대인 K는 일찍 부모가 돌아가셔서 부모 사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K의 꿈은 자식에서 좋은 아빠가 되는 것. 좋은 아빠의 조건에는 경제적인 것이 중요한데, 그에게 현실은 참 팍팍하다. 지역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긴 후에는 그나마 월 50만 원씩 해오던 저축도 힘들다고 했다. “나름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는데, 딸아이가 아프다고 하니까, 정신이 번쩍 났어요”. “탁월한 머리를 ‘공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아빠가 되는 ‘사익’을 위해 써보려고요 “ 최근 새로 시작한 투자가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큰 눈이 내겐 조금 슬프게 보였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피아니스트 김선욱 씨가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매해 1점씩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서른네 살인 자신은 이제 겨우 34점에 이르렀다고. 그리고 덧붙이기를 나이 든다는 것이 슬픈 건 더 노력할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거라고. 김선욱 씨 기준이면, 나는 이제 53점. 괜찮은 점수다. 생을 점점 더 나아질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석한 그의 태도가 참 멋지다. 삶을 예술로 만드는 비법이 있다면 그런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한 생애를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물론 무엇을 위한 노력이 되어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테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노래했다. 나는 은퇴 후에 글을 쓰고,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살면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 모든 행복이 순전한 나 개인의 안락과 연결되어 있음을 메리 울리버의 시를 통해 깨닫게 된다.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자연을 누리고, 문학을 즐긴다고.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데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있다면, 행복할까? 일하지 않아도 되는 그 많은 시간에, 시간이 많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은퇴 씨가 마음에 들어 할 대답은 찾지 못했다. 은퇴씨에게 부탁이나 해야겠다. 여보세요 은퇴 씨. 우리 같이 좀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만나서 뭘 할지 말입니다. 그때까지 아주 느리고 침착하게, 아. 다. 지. 오. 템포로 와 주시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