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를 보다가 오늘도 눈물 터진 사연
내가 좋아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유퀴즈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게다가 거기에는 아주 평범하지만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잔잔한 물결이 되어 내 마음을 차지한다.
어제 나온 한 아빠의 이야기, 잠깐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산부인과 부인과 공학박사는 결혼 후 아이가 생겼으나 말로만 듣던 유산을 겪게 된다. 남편은 아내에게 두 번째 기회가 생기면 자신이 아이를 잘 키워보겠노라고 아내를 안심시켰고 용기를 내어 아내는 소중한 아이를 만난다. 그러나 박사의 육아도 별수 있나. 육아에는 수학이나 과학 공식처럼 정해진 공식이 없다. 아니 공식이 있다 해도 예외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바로 육아의 세계였으니... 우여곡절 끝에 공학박사는 육아 웹툰을 연재하는 웹툰 작가로 제2의 인생을 맞는다. 이제는 아이가 조금 컸고 육아와 병행 가능한 자신만의 재능을 찾기도 하였으니 탄탄대로가 펼쳐질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의 이상증세가 암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부정하던 그는 병원에서 자신의 옆에서 의연히 차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를 보며 그제야 자신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아닐 이유는 없었구나."
그리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뭘까' 생각을 하다가 웹툰 연재를 계속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빨래를 개키던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고 있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위해 휴지를 가져다주었다. 내 품 안에 온 아이를 나는 있는 힘껏 꼭 안아주었다. 공학박사 아빠의 육아기인지 투병기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듣고 난 후 나는 생각했다. 한 생명을 키우느라 자신의 생명이 스러져가는지 몰랐던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나온 5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스쳐갔다. 지금 나에게 아이는 최고의 친구이자 나의 스승이지만,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달랐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기만 했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하지만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육아에 서툴렀다기보다는,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나 서툴렀다. 나의 육체의 한계와 내 마음의 갈등과 내 감정의 원인들을 나는 가늠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나무랐고, 남을 탓하기도 했다. 누구나 하는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니까, 나도 그 수많은 엄마들 중 하나 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기준도 롤모델도 모두 남들이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몰랐기에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따라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은 나도 그처럼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몸 보다 먼저 마음이 아팠었던 거다. 몸은 따라가고 있는데 마음이 못 따라주 어서였다. 마음은 몸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서툰 게 아니라 무지해서 힘들었구나.'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토록 무지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고, 그리고 아이와 가정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철없는 아이가 힘없는 아이를 키우니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공학박사 아빠는 아빠가 되는 연습을 통해 병을 얻었지만, 그로서 자신의 빛나는 재능을 발견했고 세상과의 공통분모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아픔'이었다. 인간 세상의 공통분모가 바로 아픔과 고통이 아닐까.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도 적게나마 내 아이의 아픔과 눈물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티브이 저 편에서 들려오는 낯선 이에게 도 공감을 할 수가 있다. 그 삶이 곧 나의 삶이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버티고, 저렇게 살아내고, 결국은 이렇게 울며 웃을 수 있기에.
철없는 감성 엄마는 오늘도 울었다. 낯 동안에도 아이에게 조금 더 감성적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엄마의 감성은 아직도 계발 중인가 보다.
오늘 밤에는 거대한 바윗덩이였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나 단단하게 상처로 웅크렸던 나의 마음도 불행과 행복이라는 갖가지 사건을 겪으며 조금씩 제 모습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 깎이고 걸러져 정제된 나라는 돌이 언젠가는 본디의 어엿한 자태를 드러내려나.
엄마가 되고 보니 사소하고 소소한 포인트에 걸려서 눈물을 흘리거나, 아무것도 아닌 한마디에 시궁창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건 엄마라서가 아니라. 원래 내 상처를, 바쁘다는 핑계로 요리조리 피해 다녀서였다. 하지만 이제 아이라는 존재를 두고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서 나는 내 스승, 아이 앞에 서있다.
그리고 아이가 가져다준 티슈로 눈물을 훔치며 왜 우냐는 아이의 물음에 답을 한다.
"응 저 아저씨가 아프데... 그런데 이제 괜찮대."
이제 괜찮다.
삶의 역동의 한 순간이 지나면 잠시 평온한 순간이 온다.
육아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 그러한 순간은 파도처럼 온다. 그리고 그 파도가 지나면 한 결 더 부드러워진 바닷바람을 맞는다. 그리고 그렇게 맞는 바닷바람은 내 인생의 더할 나위 없는 축복임을 알아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