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4 (7) 스핀오프 프로젝트
요즘 ‘핫플’을 다니다 보면 ‘이 브랜드가 왜 여기 있지?’ 싶을 때가 많다.
김치 브랜드가 전시회를 연다거나 유명 식당 안에 가전제품 회사의 홍보공간이 들어와 있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변신을 시도해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스핀오프(spin off)’가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진다.
스핀오프는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과 같은 콘텐츠 분야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스핀오프의 사전적 의미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잣듯이 ‘파생되다’ ‘(원심력으로) 분리하다’는 뜻인데 이로부터 콘텐츠가 외전이나 속편처럼 원작에서 파생되거나 분리되는 것을 지칭해 스핀오프 작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볼 때 콘텐츠의 스핀오프는 즐길거리가 많아지는 만큼 재미가 커지고, 제작자 입장에서도 작품이 완결된 이후 계속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이러한 스핀오프의 원리가 최근 콘텐츠 업계뿐만 아니라 브랜드, 상품, 조직, 개인 등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마치 하나의 프로젝트를 부여받은 것처럼 모두가 스핀오프를 해내는 모습이 ‘스핀오프 프로젝트’ 시대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각 주체는 어떤 방식으로 스핀오프를 하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기업은 캐릭터를 활용하는 전략을 자주 사용한다. 스핀오프가 가능하려면 먼저 기존에 사랑받는 ‘본체’가 존재해야 하는데, 캐릭터는 귀여운 외형과 스토리로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기 쉽다. 더욱이 캐릭터는 어디에 적용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만큼 스핀오프 가능성이 커진다.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는 ‘도구리’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스핀오프 해냈다. 원래 도구리는 게임 ‘리니지2M’에 등장하는 도둑 너구리에서 시작된 캐릭터인데,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아 팝업스토어, 굿즈 등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상품을 스핀오프 하는 경우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농심의 대표 제품 ‘새우깡’은 최근 ‘먹태깡’으로 스핀오프 한 바 있다. 새우깡이 과자이긴 하나 짭짤한 맛 때문에 안주로 자주 소비된다는 점에 착안해 아예 안주로 널리 알려진 ‘먹태’를 활용해 어른들을 위한 과자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스핀오프 덕에 출시된 지 오래된 새우깡이라는 과자 또한 다시 젊은 감성을 입게 됐다.
개인도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시대를 맞이해 개인의 스핀오프에도 주목해야 한다.
요즘 주변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단어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는 ‘부업’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부업은 추가적인 수입을 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는 자신의 메인 프로젝트 '업'과 관련이 있다. 직장 내에서, 혹은 본업 중에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을 별도의 개인시간을 들여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대체로 본업에선 달성하기 어려운 ‘성장’을 꾀하거나 커리어 확장을 준비하기 위한 자기계발 성격이 강하다.
특히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장년층이라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사례가 등장했다. 로커 김장훈은 최근 버추얼 유튜버(버튜버)로 거듭나며 제2의 가수 인생을 시작했다.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사람 모습 위에 가상의 캐릭터 이미지를 씌우는 버튜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金長훈(김장훈)'을 한자로 쓴 것과 닮아 있는 ‘숲튽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한 것이다. 숲튽훈은 ‘빨간 머리의 06년생 고등학생’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목소리나 말하는 내용이 전혀 청소년 같지 않아 괴리감을 주는데, 이것이 하나의 재미 요소로 작용해 요즘 1020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조직도 스핀오프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만큼 사내벤처를 통해 변화와 성장 기회를 모색한다. 개인의 스핀오프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돼 가면서 겸업금지 조항을 내걸고 골머리를 앓는 것보다 조직 내 유연한 문화를 진작하고 직원들의 근로의욕을 고취하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도 스핀오프 조직이다. 처음 세바시가 시작된 것은 CBS 방송국의 프로그램 코너였는데, 담당 PD였던 구범준 대표PD가 독립해 하나의 기업으로 설립했다. 점차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교육 콘텐츠 사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붙이면서 지금은 에듀테크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스핀오프는 사실 수년 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흐름이었다. 초반에는 젊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제과·패션업계에서 이종 산업 간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형태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는 업종 경계가 무너지고 1020 위주의 브랜드뿐만 아니라 소비자와는 거리가 먼 듯한 중공업 기업, 작은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스핀오프가 이처럼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핀오프가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적응하는 유용한 생존전략이어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본체를 유지하면서도 여러 가지 작은 실험을 하며 나아갈 방향성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이를 사업의 전면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피보팅’과 비교해 보면 차이점이 드러난다. 피보팅은 위기 상황에서 리스크를 감안하고 빠르게 돌파구를 찾아가는 전략이지만, 스핀오프는 리스크를 낮추며 유연하게 적응해 가는 전략이다.
최근 기업들이 리브랜딩에 나서고 있다. 잘 알려진 브랜드 ‘스타벅스’는 로고에서 ‘starbucks coffee’라는 문구를 지웠다. 커피만 판매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스핀오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매일유업’도 ‘유업’을 지우고 ‘매일’로 사명을 변경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유제품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건강기능식품이나 대체유 제품, 외식산업까지 확장하기 위해서다.
스핀오프 시대를 맞이해 우리는 어떤 스핀오프 프로젝트가 가능할까? 고민이 시작된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