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 눈 감고 싶어
“우리 오늘 춘천 갈까?”
“음... 1시에 교회 가야 하는데...”
“은숙 씨 감자탕 끝내주잖아. 맛있는 것도 먹고 애들 데리고 썰매장도 가자. “
“뭐, 그러고 싶긴 한데...”
“그냥 가자! 한동안 주말에 시간 내기 어려워.”
“아 그래요? 그럼 가지 뭐~~”
부부 싸움 후에 맞는 토요일이면 남편은 춘천에 가자고 한다. 그가 내미는 화해의 손짓이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못 이기는 척 춘천을 향해 달린다.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산길로 들어서면 샘물이와 딸기가 멀리서 짖으며 꼬리를 흔든다. 차 소리만 듣고 어찌 알고 이리 반기는지, 귀여운 녀석들. ‘우리 딸기 잘 있었어?’하고 돌아서면 산자락 아래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2미터 높이의 기세 등등한 로봇이 큰 칼을 차고 서 있고 그 옆에는 좀 작은 로봇이 말 위에서 달릴 기세다. 작은 조각공원에 온 듯하다. 샘물이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마당 왼편은 정크 아티스트 정춘일 작가의 작업실이다. 그가 손수 지은 살림집이 한가운데에, 잔디밭을 지나 산 아래쪽으로는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풍경이 있는 산마루 미용실>이 자리한다. 건너편 도랑 위에는 한여름 술판 벌리기에 제격인 주막이 걸려있다.
딸아이 다섯 살 때 이곳에 처음 왔다. 정 작가네 삼 남매와 함께 마당을 뛰어다녔다. 강아지 사달라고 조르던 딸내미는 샘물이, 딸기, 설리의 부드러운 털을 어루만지며 입이 함박만 해졌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앵무새 ‘보리’가 어깨로 기어오르면 간지러워 키득거렸다. 텃밭에 물을 주는 건 나의 즐거움! 상추, 로메인, 고추, 아스파라거스, 당근 줄기에 분사 호스를 솨아 솨아 흔들면 심장이 놀기 시작했다. 초록빛 생명체에 물기가 흠뻑 젖어들 때 말라붙은 내 마음도 촉촉해졌다. 대지의 여신처럼 생명의 환희가 차올랐다. 여름에는 집 앞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두 집 식구들만 놀 수 있는 한적한 계곡에 차광막을 치고 삼계탕을 끓이고 수박을 쪼갰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워터파크와는 완전 다른 세상에서 즐기는 신선놀음이라니.
김장철에는 아이들하고 밭에 나가 열무랑 배추를 뽑았다. 살면서 처음 해봤다. 가마솥에 오리백숙을 끓이고 아궁이에는 고구마랑 밤을 구웠다. 여름에는 야외 데크에서 숯불 닭갈비를 굽고, 겨울에는 마루에서 철판 닭갈비를 볶았다. 안주인 은숙 씨의 음식은 춘천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다. 단골 메뉴인 닭갈비와 감자탕은 말할 것도 없고 돼지 앞다리살만 넣고 끓인 김치찌개도 세상에 바랄 것 없는 기쁨을 준다. 달걀 프라이는 또 어떠한가! 삼 남매가 밥 당번을 맡아 키운 닭들이 낳은 따끈한 달걀은 마트에서 사 온 것 하고는 빛깔도 맛도 차원이 달랐다.
<풍경이 있는 산마루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며 부부싸움의 뒷담화를 수다로 풀어내곤 했다. 작가의 아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대화가 막힘없이 술술 흘러간다. 각자 남편에 대한 불만과 섭섭함을 조목조목 성토하다 보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 같았던 마음이 슬며시 녹아내린다. 미처 몰랐던 내 낭군의 근황을 은숙 씨에게 전해 듣는 때도 있었다. ‘아 그랬구나...’하고 손톱만큼 더 그를 이해하는 순간이다. 풍경과 힐링이 있는 미용실이다.
술 좋아하는 정 작가와 이 작가, 그리고 작가의 아내들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으면 소주, 맥주, 와인 잔이 골고루 돌아간다. 아이들이 일찌감치 털고 간 자리에 앉아 밤이 늦도록 닭갈비를 뜯으며 속이야기를 나눈다. 부부 싸움의 종전 선언과 새로운 평화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시간이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건 대화는 늘 ‘작가로 산다는 것’과 ‘작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으로 흘러가곤 한다.
정춘일 작가는 9년 전에 고향인 춘천으로 돌아왔다. 늦깎이 초보 농사꾼으로 옆집 할머니를 눈치껏 따라 하며 농사를 배웠다. 송이버섯도 키우고 양봉도 치며 제법 농부 테가 나지만, 귀향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대한민국 메탈 아트 1세대로 주목받는 작가였으나 가정을 이루며 미뤄둔 예술 활동에 집중하려는 것이었다. 압구정동에서 잘 나가는 미용사였던 그의 아내는 3년을 반대하며 버티다 결국 그의 손을 들어줬다. 두 사람은 허허벌판 산자락을 갈고닦아 집을 짓고 작업실을 짓고 1인 예약제 산골 미용실도 안착시켰다.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한 기반을 만들고 지금은 예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정 작가와 나의 남편은 30대 초반에 그룹 전시를 계기로 처음 만났다. 이후 예술에 대한 열정과 하루도 빠짐없는 소주 사랑으로 20년 동지애를 키웠다. 오십 줄에 아직까지 자기 작업을 하며 버티는 몇 안되는 예술가로 외롭고 고단한 길을 함께 버텨왔다. “아티스트로 살아간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아티스트로 먹고사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라고 <미술가로 살아가기>에서 폴 도렐은 말한다. 은숙 씨와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가의 아내로 살아가기‘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건 마치
’전쟁터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그녀는 웃음 짓는다. 작가들의 이기심과 똥고집에 대해 실컷 흉을 보지만 ‘내 남자 내가 지킨다’로 결론이 나곤 한다. 사랑이 뭔지, 참나...
그 밤에 우리는 작가로 산다는 것, 작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 늙어가는 우리와 커 가는 아이들의 신맛, 짠맛, 단맛을 몽땅 섞어 마신다. 이틀 날 아침에는 돼지고기 듬뿍 넣은 시원한 김치찌개를 양푼 째 놓고 먹으면 싹 해장이 된다. 커피 한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선다. 미용실과 주막 사이에 폐목으로 만든 흔들 그네가 앉아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다. 이곳에 앉아 산들바람을 맞으며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본다. 휴우~~ 깊은숨을 내쉬면 뺨에 부딪치는 햇빛의 촉감, 새소리, 바람 소리, 멀리 산자락이 보내는 미소까지 다 느껴진다.
아! 나 아직 살아있구나.
이렇게 평온하고 행복하네.
이 그네에서 꼬박꼬박 졸다가 스르르 눈 감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을 마감할 수 있으면 참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