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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니아 Apr 08. 2019

통째로 삶아먹을 테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필사하며

부스 부슬 비 내리는 토요일 저녁, 분홍빛 도는 돼지 앞다리 살을 통째로 넣고 보쌈을 삶는다. 월계수 잎과 통후추, 재래 된장 한 수저를 넣어 살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익힌 후 새우젓을 콕 찍어 김치 한 점 얹어 먹으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이 밀려든다. 보쌈처럼 통째로 삶아 먹고 싶은 책이 있으니,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이다.      


인기 칼럼니스트라는 그의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구립도서관에 희망 도서 신청해 놓고 천천히 읽어보려 했다. 어쩌다 서점에서 이 책을 펼쳐 들고 읽다가 ‘도대체 김영민이란 무엇인가?’ 물으며 이틀간 쾌락독서를 즐겼다. 그리고 결심했다, 김 교수를  글쓰기 롤모델로 삼기로! 나도 그처럼 칼럼을 잘 쓰고 싶다. 해서, 이 책을 통째로 필사하며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한 줄 한 줄 내 손으로 옮겨 적으며 그의 질문과 위트와 사유를 연습해봐야지. 보소, 내가 당신 책을 통째로 삶아먹어 볼라요!       


프롤로그부터 시작, 지금까지 10개의 글을 필사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고소함이 입안 가득하다. 그래도 손가락은 욱신거리고 피곤하다. 나는 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통째로 필사하려는 걸까?           


첫째, 독특한 유머와 읽는 재미가 있다.      


김영민 교수를 유명하게 만든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정체성의 질문 위기 상황에서 제기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 친구의 과거 연애편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심정지가 올 정도로 느끼한 문장으로 가득 찬 연애편지’를 쓴 과학자에게 왜 그런 표현을 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갑자기 과학자다운 평정심을 잃고 고성을 질러댔다. “그 편지를 쓰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더러 왜 그랬냐고 묻지 마!”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괴성을 지르며 나를 할퀴었다. 그 더러운 손톱에 할퀴어지는 바람에 내 손목은 진리를 위해 순교한 중세 성인처럼 피를 흘렸다.      

 한편, 「유학생 선언」에서 그는 중심부를 겉도는 유학생이라는 존재를 이야기하면서 등록금 몇 푼 벌자고 사자 인형 가죽을 뒤집어쓰고 등록처에서 마스코트 역할을 하던 날의 기억을 썼다.     


..... 먼 타향에서 성격에 반하는 일을 하자니, 죽을 맛이었다. 한때 <논어>를 외우고 살던 신비한(?) 동양의 선비가 양인들의 기쁨조를 하면서 밥을 벌어먹어야 하다니...... 이 악몽의 정점은, 내가 사자 인형 가죽의 아랫도리 앞뒤를 뒤바꿔 입는 바람에, 꼬리를 엉덩이가 아닌 정면에 대롱대롱 메단 채로 한동안 그 짓을 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아무리 사자의 양물이기로서니 그처럼 길고 클 수야 있겠는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뒤로 넘어가기에, 그저 내가 마스코트 노릇을 의의로 꽤 잘하나 보다 생각했다..... 흑흑.     

하하. 정치사상가 교수가 쓴 칼럼이라 엄숙하려니 했는데 이건 너무 재밌다. 일찍이 접해 보지 못한 독특한 블랙 유머가 독자를 즐겁게 한다.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던지는 글 구석구석에 아릿한 웃음 주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김영민이란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점점 더 궁금하다.

        


둘째, 은근하게 통렬한 질문을 던진다      


「위력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난생처음 논문 심사를 받던 날, 심사를 맡은 교수들이 자신의 논문을 읽지 않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알고 어처구니없지만 충실하게 학생 역할을 수행하고 논문 심사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 날의 일은 오랫동안 수치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도 나는 다소곳이 앉아 있기보다는 앞에 놓인 탁자를 당수로 쪼개며, “선생님들, 논문을 읽지도 않고 심사한다고 여기 앉아 계실 수 있는 겁니까?”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목젖을 뽑아 줄넘기를 한 다음에, 창문을 온몸으로 받아 깨면서 밖으로 뛰쳐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고는 학교 운동장에서, 벌거벗고, 흙을 주워 먹으며,  트랙을 뱅글뱅글 돌아야 하지 않았을까? “      

자신들이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위력이 왕성하게 작동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무기력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 이렇듯 다 알면서도 누구 하나 드러내 말하기를 꺼리는 화두를 그는 자기만의 화법으로 은근하게 풀어낸다. 괴기하면서도 통렬하게 위력자의 를 꼬집는 이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독자가 나뿐이랴.      


「자식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는 읽을수록 가슴에 젖어든다. 오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죽기 전에 자식이라도 하나 두려나?’라는 질문을 찾아가는 여정이랄까. 글은 아이를 낳는 것이 좋은지, 아니 낳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물음을 꺼내놓지만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고 김 교수와 스승간의 소소한 대화로 마무리된다. 아이를 갖는 것이 인생의 번뇌이기도 하고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낳는 것과 안 낳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 끝에 아이를 안 낳고 연구에 정진한 것으로 읽혔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이야기 자체가 스스로 드러나게끔 글을 지었다.



셋째,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도록 자극한다.      


김 교수의  글을 읽으며 좀 더 깊이 생각하며 살고 싶 마음이 들었다. 책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노려볼 만한 어떤 고양된, 성스러운, 초월적인 계기’의 하나로 책 읽기를 언급한다. 책이라는 걸 읽는 행위 자체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라며 마케아벨리의 <만드라골라>부터 만화가 김진태의 <보글보글>까지 폭넓은 책 읽기를 권한다. 세상에 기성복처럼 딱 정해진 것은 없으므로 중요한 건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참고 체계를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런던 리뷰 오브 북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같은 고급 서평지가 창간되어 사람들이 지적인 에세이를 발표하고 활발한 논의 일어나기를 바라는 희망을 강조하면서.


김영민 교수가 좋아한다는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읽고 있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만난 유럽과 일본의 비교 문학,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안개 낀 밀라노의 정경 등을 세심하지만 심각하지 않게 담아낸 정서가 김 교수의 글과 닮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 읽기와 사유로 나의 삶은 어제보다 조금 더 즐겁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끝까지 필사하며 보쌈처럼 통째로 삶아서, 현미밥처럼 꼭꼭 씹어 먹으리라. 이 책을 읽으며 한껏 고양되고 성스러웠던 시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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