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손을 잡아주는 <시작노트>
내 인생 이렇게 끝나려나. 아무리 갱년기라 해도 그렇지, 삶이 어쩜 이렇게 황폐해질 수 있을까? '마흔을 넘기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늦다'는 게 사회 통념인데 오십을 홀랑 넘겨버렸으니 이를 어째!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모지스 할머니.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책에서 그녀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라고 상냥하게 말하건만... 대체 어떻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걸까?
이런 갈등으로 머리를 쥐어뜯던 차에 피터 킴의 <시작노트>를 만났다. ‘우리 인생의 최대 영광은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이 한 줄이 뼈를 때렸다. 저자는 ‘실패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며 네비게이션이 경로를 재탐색해서 목적지를 찾아가듯 ‘조금 늦을 수 있지만 언젠가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고. 오늘도 마음만 먹지 말고 새롭게 시작해 보라고.
피터 킴... 직장 생활 10년 하고 좋아하는 일을 위해 퇴사한 걸 보면 마흔 안팎인 것 같은데, 방황하는 오십 대가 똘똘한 인생 후배에게 한 수 배운다.
<시작노트>는 사람을 바꾸는 방법으로 ‘시간을 평소와 다르게 쓰는 것’에 대한 저자의 소소한 경험들을 차분차분 소개한다. 우리는 평생 67,500시간 TV를 본다며 그 시간을 줄이고 하루에 조금씩, 꾸준히 경험을 축적하라고 권한다. 하루 5분 일기 쓰기, 하루 15분 독서, 30일 매일 글쓰기 등 작은 실천들이 쌓여 저자는 책을 출간하고 강의를 하며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놀라운 확장을 경험했다.
지금 인생의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나도 얼마 전까지 뚜렷한 인생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분기별/월별/주간 실행 계획을 짜고 부지런히 자기 계발을 했다. ‘나도 다 해 봤다’는 생각 때문인지 하루 5분, 매일 15분 같은 깨알 프로젝트가 처음에는 좀 시시해 보였다. 한데, 잘난 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겸손한 목소리로 건네는 그의 이야기에 젖어들어 끝까지 읽고 말았다. 흠, 이렇게 쉬운 거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은 건 바로 따라 해야지!
피터 킴은 <스몰 스텝>, <타이탄의 도구들>, <하루 5분 아침 일기> 3권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좋은 습관으로 일기 쓰기를 꼽았다.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쓸 때 자기반성, 치유 효과, 글쓰기 능력 향상‘ 등 유익함이 있다며 긴 시간을 투자할 필요 없이 하루 5가지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나도 적어봤다.
첫째, 지금 이 순간 감사한 일 3가지
1. 카페에서 <시작노트>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 누리는 것
2. 글쓰기를 통해 좋은 사람들과 연결된 것
3. 목련, 홍매화, 개나리 등 봄꽃이 활짝 핀 것
둘째,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1. 긍정적인 말, 감사의 말을 하자
2. 입 근육을 움직여 억지로라도 웃자
셋째, 나를 위한 긍정의 한 줄
나는 아름답고 존귀한 사람이야. 이 지구 상에 전무후무한 하나뿐인 존재라고!
넷째, 오늘 일어난 멋진 일 3가지
1. 영아부에서 귀여운 아가들을 만난 것
2. <시작노트>와 만남
3. 남편이 해 준 등갈비찜이 정말 맛있어^^
다섯째, 무얼 했더라면 오늘 하루가 더 만족스러웠을까?
영아부 선생님들에게 지난주 어찌 지냈는지 개인적인 관심을 좀 더 표현하면 좋았을걸.. 다음 주에는 그리 하자.
5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적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저자는 이렇게 작성한 5분 일기를 매일 블로그에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이 형식을 따라 일기를 쓰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냥 소비하듯 지나갈 수 있는 일상에서 의미 있는 질문들에 답변을 하며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한다면서
<시작노트>
피터 킴은 소소하고 꾸준하게 할 만한 일을 찾다가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각 역 이름으로 N행시를 지었다. 자주 타는 3호선을 위에서부터 훑어 내려가며 43개 역 이름으로 N행시를 지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어서 2호선, 분당선까지 열 달에 걸쳐 100개가 넘는 N행시를 완성했다. 자주 다니는 양재, 서초, 외대입구역으로 즉석 N행시, 나도 도전!
양 양재역을 수없이 드나들지만
재 재미 삼아 이행시는 처음일세, 반갑다 양재!
서 서초동 소재 회사에 다닌 지 24년
초 초조한 갱년기를 자알 넘겨보자!
외 외대입구로 가는 1호선 전철
대 대학생도 많지만 노인들도 많다
입 입성이 초라한 빈곤층도 많다
구 구태여 말 안 해도 양극화가 보인다
생각보다 큰 고민 없이 쓸 수 있었다. 전철 안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렇게 이용할 생각을 한 번도 못했는데... 피터 킴, 참 섬세한 사람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란 옛말처럼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천 리 길에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코끼리를 먹는 방법은 한 입 씩
야금야금 먹는 거라던 농담이 떠오른다.
<시작노트>
피터 킴은 ‘기록의 힘을 믿는 사람’이며 ‘하루하루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연초에 매일 꾸준히 기록으로 남겨 두면 좋을 만한 것을 고민하다가 1) 하루 한 컷 생활사진 남기기 2) 아파트 복도에서 바라보는 아파트 단지의 사진을 찍어 계절의 변화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열어 ' 내 삶의 한 컷'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마다 삶의 한 조각을 쌓아 보자는 의도로 시작했는데, 채팅방에 사진이 올라가자 이야기 꽃이 피었다. 음식 사진 한 장에 다들 침을 삼키며 그날 반찬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이 얽히고 관계가 가까워졌다.
OK! 내 삶의 한 컷, 이건 너무 쉬운데. 카페에서 <시작노트> 읽는 이 순간을 찰칵!
<시작노트>와 기분 좋은 데이트 후에 올려다본 하늘도 한 컷, 찰칵!
이렇게 오늘 내 삶의 두 컷을 건졌다. 유후~~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보면, 내가 왜 이 물건을, 이 상황을, 이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는지, 그때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걸 느꼈는지가
고스란히 떠오른다.
<시작노트>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어 버린 건 아닌지, 여전히 속이 울렁거린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었지만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말을 믿어봐야겠다. <시작노트>를 옆에 가까이 두고 하루 5분 일기 쓰기, 하루 15분 필사, 50일 주 1회 글쓰기를 함께 해 보련다. 20년 넘는 경력과 경험, ‘왕년의 황금 송아지’일랑 다 내려놓고 이십 대의 초심을 되살리고 싶다. 지하 30미터 우물같은 우울감이 또 밀려온다 해도, 하루에 벽돌 한 장씩 꾸준히 쌓다 보면 작은 집 하나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혹시 당신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시작노트> 한번 펼쳐보세요.
머뭇거리는 당신 손을 꼭 잡아줄꺼예요^^.
https://brunch.co.kr/@reading15m/655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살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하세요. 때로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에서, 애나 메리 모지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