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런치 100일 돌아보기
<공대생의 심야서재> 글쓰기 강좌 숙제를 한 줄도 못 쓰고 별마당 도서관에 왔다. 초등 4학년 딸내미는 <조선왕조실톡> 만화책을 보러 가자 보채고 어미는 대학원 과제 준비로 끙끙거리다 채 못 마치고 와버렸다. 자식 등살을 우째 이기겠나. 매주 멋지게 글을 쓰고 싶은데 웬걸. 마감을 코앞에 두고 KFC에서 따님이 닭다리 뜯는 사이, 수첩에 빛의 속도로 조각 글을 적는다.
‘KFC 치킨은 11가지 비밀 양념과 최상급 품질의 닭고기를 사용. 1952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치킨 원조...“ 치킨 전단지 광고처럼 내게도 글쓰기의 ’11가지 비밀 양념‘이 있어서 후딱 튀겨내면 좋으련만. 비밀 양념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 걸까? 뚱보 할아버지네 67년 역사가 티끌 같이 쌓여서 특별한 맛을 만든 것이니 우짜겠노! 꾸역꾸역 쓰는 수밖에.
브런치 작가로 데뷔한 지 3개월. 블로그 글쓰기는 생애 처음이다. 오랫동안 일중독 수준으로 회사 일에 매달려 있었다. 퍼뜩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삶의 회의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김민식 PD의 <매일 아침 써봤니?>를 읽고 블로그를 시작해봐야지 생각하던 차에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만났다. 세련된 UI에 핫한 트렌드와 젊은 생각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글쓰기의 향연장. 달달하고 보숭보숭하고 촉촉한 그 무엇. 이름만으로도 폼나지 않은가, 브런치 작가!
작년 12월 21일, 나의 가출사건을 첫 글로 발행했다. 민망한 속살을 꺼내놓고 나니 체증처럼 막혀있던 덩어리가 스윽 내려갔다. 남편은 왜 이런 얘기를 썼냐며 화를 냈다. 나는 글을 쓰면서 힘들었던 마음을 실어 보냈는데, 그는 ‘가출’ 소리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이다. 이 남자가 나보다 더 힘들었나 보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썼다. 일기장에 적었던 생각들을 꺼내어 독자가 있는 글로 쓰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나 자신을 오롯이 껴안고 어루만지는 시간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고 공유하는 게 참말로 신통하네. 누군가 ‘고통 없이 가는 법’이라는 검색어로 내 글을 조회한 것을 보았다. 심장이 저릿했다. 그 사람이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을 멈추고 희망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공대생의 심야서재> 글쓰기 강좌를 신청하고 <경험수집잡화점>의 50일 주 1회 글쓰기 단톡방에 참여하며 글벗들을 만났다. 그동안 ‘사적인 나’를 독자에게 드러내는 글쓰기를 안 해 봤다. 블로그도 처음이거니와 페이스북에도 내 의견과 생각을 드러내는 글쓰기는 피했다. 그런데, <공대생의 심야서재> 첫 주 과제가 ‘나는 무엇인가’였다.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몸살을 앓았다.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내 이야기를 공개하고 합평회 때 그 글을 읽으면서 얼굴이 뜨끈뜨끈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해서 쓰긴 했는데, 꾹꾹 눌러놨던 속내를 열어 보이는 게 영 불편했다.
합평회가 끝나고 공심(공대생의 심야서재)님의 깨알 코멘트가 도착했다. ‘이 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인지 한 번 여쭤보고 싶어요. 존재적 외로움을 느끼는 자아를 위로하려는 거라고 봐야 할까요? 외로움을 느끼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걸까요?’ 글쓴이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코멘트에 눈물이 났다. 글을 쓴 이유가 ‘존재적 외로움을 느끼는 자아를 위로하려는’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발행한 <괜찮아, 사람이라서 외로운 거야>는 브런치 홈에 소개되어 158회 공유됐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다. 업계 선배 한 분이 이 글을 읽고 연락을 주셨다. 차 한 잔 하며 얘기를 나눴다. 늘 씩씩하게 보이는 내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며, 당신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공감차’를 마신 후, 그녀는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를 선물로 보냈다.
네 번째 글 <대상포진이 남긴 것>은 다음 메인에 노출되면서 하루 조회수 2만 2천을 찍었다. (꺄악~~~) '브런치를 읽다'에 포스팅되어 구독자가 쑥쑥 올라갔다. 브런치와 썸을 타다가 찐하게 키스를 해 버린 느낌 이랄까. 침만 꼴깍꼴깍 삼키다 드디어 첫 키스! 끙끙 몸살 앓다가 반신욕 후에 뜨끈한 쌍화탕 들이킨 것처럼 후끈 몸이 달아올랐다. 독자에게 사랑받는 건 이런 건가 보네. 바닥을 헤매고 있던 존재감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았다. 나 아직 안 죽었네... 갱년기 아줌마의 우울 모드를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비집고 올라왔다.
우리 집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작년에 <썬의 요리교실>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열고 구독자 14명을 확보한 따님. 올해 구독자 40명이라는 목표를 정해 놓고 가슴 졸이고 있는데, 엄마의 브런치 구독자가 100명을 넘으니 엄청 부러워한다. 자기도 글을 쓰고 싶다며 아홉 살 때 쓰다 만 소설 <샐리의 모험>을 다시 끄적거린다. 5편 이상 쓰면 전용 블로그를 열어주겠다 하니 좋아한다. 처음에 버럭 했던 남편도 글 쓰는 걸 지지해준다. 말로 하면 자꾸 다투게 되는데 글을 엿보면서 나를 조금 더 이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응원해준다. 계속 쓰라고.
글을 쓰면서 TV 보는 시간이 확 줄었다. 아니 거의 안 본다. 해독주스 마신 것처럼 마음이 맑아졌다. 책 읽기도 큰 즐거움이다. 글쓰기 강좌 10주를 따라가며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함께 읽었다. <쓰기의 감각>, <글쓰기의 최전선> 등 글쓰기 속으로 한걸음 더 이끄는 책들을 만났다. Peter Kim의 ‘하루 15분 필사’를 하며 매일 새로운 책을 만난다. 책을 다 읽지는 못해도 책의 한 문장과 목차를 적으며 매일 아침 정신적 스트레칭을 한다. 마음도 몸도 한결 가뿐하다.
내 일상을 바꾼 글쓰기.
어찌나 고마운지.
아직 주저하고 있는 당신도 시작하면 참 좋겠다.
글쓰기가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변화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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