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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니아 Apr 30. 2019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야!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아홉 살 때였나 봐. 네가 처음 결혼 안 한고 혼자 산다는 말을 했던 때가. <나 혼자 산다> 인기 탓인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분위기를 타고 <나 혼자 산다>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1~2위를 놓치지 않고 여전히 인기가 많잖아. 네가 불쑥 결혼 안 한다는 말을 했을 때 사실 좀 놀랐지만, 초등학생들이 종종 그런 말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놓았지.  


초등학교 입학 이후 네 장래 희망이 요리사, 건축가, 카페 사장으로 변해왔잖아. 1학년 방과 후 요리시간에 만든  피낭시에, 컵케잌, 떡볶이를 맛보며 행복했단다. 그 후에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르 코르뷔지에 전시회 가서 ‘작은 방’ 을 보고 좋아라 했던 것 기억나지?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경험을 해 보는 이 과정이 참 흐뭇하더라고. 그런데, 얼마 전  ‘나중에 택시 운전을 하고 싶다’ 해서 왜냐고 물었더니 '택시 운전은 어렵지 않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잖아. 카페 사장도 힘들지 않게 돈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엄마 머릿속이 복잡해졌지. 이제 고작 열한 살인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렵게 느껴진 이유가 뭘까? 삶에 멋지게 도전하고 싶 나이인데... 엄마가 무심코 흘린 궁색한 얘기가 너에게 부담을 준 것은 아닌지 가슴이 먹먹했어.


지난번 작은 도서관에 다녀온 날 기억나? 갑자기 ‘엄마, 나 결혼이 하고 싶어 졌어..’ 하길래 뭔 일인가 했더니 신혼부부 얘기를 그린 만화책 <어쿠스틱 라이프>를 보고 아기 낳고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해서 '휴우...' 안심을 했단다. 엄마 친구들 중에 아직 결혼 안 한 이모들 몇 명 있잖아. 그런데, 요새 2~30대 젊은 이모들은 ‘결혼 안 하겠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비율이 점점 늘고 있어. 결혼은 했지만 아이 낳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대.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는 경제적인 부담이 가장 크다고 해.



네가 병설 유치원 다닐 때는 한 달에 우유 간식비 6천 원인가? 그 정도밖에 안 들었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양육비를 나라에서 다 지원해 줘서 엄마, 아빠가 내야 하는 비용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방과 후 터전’ 이랑 바이올린, 한문 교양반 등 합치면 한 달에 70만 원이 좀 넘어. 우리나라 가구의 월 교육비 평균인 7~80만 원 수준이야. 그래도 우리 집은 아빠랑 엄마가 함께 벌고 아이도 하나니까 여유로운 편인데, 혼자 일하고 자녀가 여럿인 가정은 교육비 부담이 크겠지?


교육비 지출이 부담스러워서 아이를 안 낳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니까 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양육비랑 교육비에 나랏돈을 쓰기 시작했어.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6년부터 저출산 사업에 150조 원이 넘는 돈을 썼는데,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고 계속 떨어지고 있다니 어쩌면 좋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대.


정부가 돈을 푼다고 효과가 제대로 나겠습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 참 살만하다, 이 좋은 세상 혼자만 살다 가서는 안 되겠다 ‘는 생각이 들면 출산율이 높아질 겁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내 아이에게도 좋은 세상 경험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겠지? 지금 우리나라는 대학입시 경쟁도 심하고, 취도 어려워서 사람들이 ’ 좋은 세상‘보다는 ‘힘든 세상’이라는 말을 더 많이 하거든...


엄마가 ‘늙은 엄마’라서 가끔 너에게 미안해. 그래도, 마흔둘 늦은 나이에라도 너를 낳은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커리어 우먼으로 20년 넘게 일하면서 만족스럽고 보람도 있었지만, 너를 낳은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니. 때때로 네가 엄마 말을 무시하고 고집을 피울 때면 정말 괴로워. 세상 어떤 일보다 자식 키우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 내 일 같으면 힘들어도 꾸역꾸역 하면 되는데, 자식은 내 마음 같지 않거든. 다른 인격체이니까 그 생각을 존중하고 참고 기다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인격을 수양하게 되는 것 같아. 너라는 생명체, 70억 인구 중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를 낳아서 엄마가 참 뿌듯하다는 거, 꼭 기억해주길 바래!





너의 미래를 생각할 때, 대학 졸업하기 전에 엄마 아빠 모두 은퇴할 나이라는 게 마음에 걸려. 대학 졸업 후에 박사학위까지 더 공부를 하고 싶다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싶다거나 할 때 우리가 후원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연금 수령액도 점점 줄어든다 하고. 아직은 10년도 더 후의 일이고 지금 아빠, 엄마가 열심히 일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있으니까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너는 마음껏 네 꿈을 펼치면 좋겠어. 10년 후에는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조금 더 살기 좋은 나라, 열심히 공부한 젊은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엄마랑 아빠가, 우리 어른들이 정신 바짝 차릴게!


살아가는 일이 때론 많이 힘들지만, 희로애락 사자성어 배웠지? 삶에는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이 함께 있다는 것. 그래서 한 번 살아볼 만하다는 거.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너처럼 예쁜 아기 낳고 살면 좋겠어. 엄마가 너를 낳아서 행복한 것처럼, 너도 한 번쯤은 엄마가 되면 좋을 것 같아.

사랑해, 우리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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