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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니아 Sep 24. 2019

올해도 모기에 물리다니!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를 읽으며


모일간지의 인터뷰 칼럼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즐겨 읽는다. 얼마 전 85세 정신과 의사 이근후를 인터뷰한 “행복은 신기루,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 덮고 살아야”가 마음에 들어왔다. 50년간 15만 명의 환자를 돌본 의사는 “원한, 분노, 불안 없앨 수 없어... 작은 재미로 덮어둘 뿐”이라고 말한다.


이근후 교수는 ‘어차피 살 거라면’이란 부제를 달고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는 책도 냈다.


우리 중 누가 이 세상에 나오고 싶어서 나왔습니까? 저 세상으로 떠나는 것도 내 의지와 상관이 없지요.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잖아요. 어차피 주어진 생명이니 나름대로 즐기다가 저세상으로 가자는 거죠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에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요새 삶에 대한 회의를 자주 느끼곤 하는데, ‘어차피 살 거라면’이란 전제가 아기 포대기처럼 포근하게 마음을 감싼다. 팔십오 년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원한, 분노, 불안을 목격하고 당신 스스로도 온갖 질곡을 경험한 어르신의 말씀이 가을 아침 한 잔의 국화차처럼 따듯하다. 이렇게 이근후 교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만났다. 이 책은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인생 기술 53가지를 제시하여 40만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유쾌하고 멋지게 나이 드는 건 어떤 걸까?  



1. 생활이 단순해진다.


나이가 들면 좋은 점은 생활이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책임도 의무도 줄어들고, 시간이 늘어나고 인내심이 많아지고 감정이 섬세해진다.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불어난 시간에 하나씩 해 보는 재미를 누리는 것도 좋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거나 악기를 배워도 좋으리라.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중


20대부터 40대까지 나는 ‘열정의 아이콘이었다. 항상 다이내믹한 삶을 추구하며 많은 일을 벌이며 욕심껏 살았다. 50이 넘어 넘어 뜨거운 정열이  사그라지고 생활이 단순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단순해진 일상이 고맙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어찌 살았을까? 수많은 책임과 의무에서 놓여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회사 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퇴근하면 바로 쓰러져 ‘힘들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은 오후 4시에 퇴근해 내 아이의 간식을 챙긴다. 여느 엄마들처럼 딸내미의 학원 스케줄을 챙기고 저녁은 유기농 식재료로 손수 지어 먹인다. 좋은 엄마인 것 같은 기분이 포도송이처럼 익어간다.  



2.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요즘 나는 매일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주위에는 밤에 자다가 세상을 떠난 동창이나 선후배가 많다. 나 또한 내일이 반드시 예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와! 눈떴구나! 하하하’하고
쾌재가 터져 나온다.
이 순간의 찰나적인 신비감이라니!
...
이것도 나이 든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동이다.
일본 시인 이싸의 하이쿠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중


올여름 유난히 모기에 많이 물려 짜증이 났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어도 꼭 나만 물리는 것 같아 속 상했다. ‘나이 드니 별게 다 성가시게 구네...‘  자다 깨서 내 피를 빨아먹은 놈을 기어이 찾아내 때려눕혔다. ‘이놈의 쉐키, 네가 뭔데 내 인생을 이렇게 피곤하게 하?’ 모기에 대한 상념이 많았다. 그런데,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라니. 오 마이 갓!

이런 태도야말로 저자가 유쾌한 노년을 살 수 있는 비결이로구나.


늙는 것은 단연코 유쾌하지 않다. 불편하고 우울하고 슬퍼지기 십상이다. 모기에 물리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이라야 매일매일을 신기하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  

Image from Pixabay



3. 차선으로 산다


나는 최선이라는 말이 싫다. 최선은 내가 가진 100을 다 쓰라는 말이다. 그러면 씨앗을 먹어 치운 농부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차선이라고 해서 적당히 하다가 내키는 대로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매달리기보다 잘하는 정도에서 즐기고 만족한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하자고 하면 1등, 최고를 추구하게 되고 그것은 경쟁을 부추길 뿐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중


아, 나는 바보처럼 왜 항상 최선을 다했을까? 차선으로 사는 지혜를 왜 미처 몰랐을까?


이근후 교수가 50년간 만난 15만 명의 환자들 중 가장 많은 연령군은 40대였다. 그들은 ‘죽도록 일만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희생하면서 살 필요가 없었는데’하며 지난 삶을 후회했다고 한다. 나만 바보는 아닌가 보다. 수많은 바보들이 죽도록 최선을 다하다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상황에 다다르는구나. 이제라도 깨달은 게 다행 아닌가!


살아 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인생의 시련은 자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심정으로 눈을 씻고 찾아보면 주변에는 작은 즐거움들이 늘 존재합니다. 그런 즐거움을 찾아내서 누리겠다고 마음먹으면 인생은 어떤 시련이 와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미약한 인간이 인생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태도이기도 하고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중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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