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지방교육행정직 공무원이 되었다.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
석달 정도 였던 것 같다.
소방서 퇴근 후 다른 약속이 없다면 나는 고시원에 바로 들어갔다. 6월에 있을 시험에 올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반행정직 시험을 준비할 때 공부했던 5개 과목 중 국어, 영어, 한국사, 행정법은 어느 정도 점수가 나오는 상태였기 때문에 최대한 감을 유지하는 식으로 준비를 했고, 처음 접하는 교육학개론은 동강, 회독, 문제풀이, 암기를 병행하면서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두번 다신 이런 시험을 준비하고 싶지 않았고 이번엔 뭔가 되겠단 좋은 느낌 때문에 힘든 시간이었지만 묵묵히 견뎌냈다.
화재 출동을 일주일에 두번 이상은 나가면서 몸은 조금씩 일에 적응 되어 가는 듯 했다. 야간 근무 조가 되면 오후 6시 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근무를 하게 되는데, 출동이 없을 경우 행정 업무를 조금씩 보다가 교대로 취침실에서 잠을 자게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재출동이 발생하면 "에엥~"하는 긴박한 소리와 함께 본부에서의 화재 출동 방송이 나오고 이 소리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잠에서 깨어 출동을 하곤 했다. 그런데 화재출동이 아닌 구급차 출동의 경우 "띵동~ "하는 소리로 시작하는 방송이 나오게 되는 데, 어느 사이인가 나는 이 소리까지 익숙해져서 띵동하는 소리는 듣지도 못하고 잠을 자다가 에엥하는 소리에만 잠을 깨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그만큼 예민하게 생활을 한 것 이었고, 깊은 숙면이 아니다 보니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쥐죽은 듯이 점심까지 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런 부분도 PTSD의 가벼운 전조증상이 아니었을까 쉽다. 모쪼록 현직에 계신 소방공무원분들이 작은 스트레스라도 쉽게 넘기지 말고 슬기롭게 극복하시길 바라고, 정책적으로도 많은 지원과 개선이 있길 바랄 뿐이다.
직장생활은 일이 힘든 것이 아니고 인간관계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닌가?
현재까지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바인데,
소방서 근무 5개월쯤 같은 소방 센터 내에서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옮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해당 팀장이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사람이어서 같이 근무하는 데 여러모로 힘들 었던 시간 이었다.
화재출동을 나가면 현장에서 비상식적인 이유로 하급자를 갈구고, 출동이 없을 때는 사무실에서 팀장이란 권력을 휘두르며 사무실에 냉기를 만들곤 하였다. 일일이 생각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유치한 이유로 하급자를 갈구곤 하던 게 마치 군대 내무반의 병장을 보는 것 같아 내가 다 화나고 때론 안타깝기도 했다.
시간은 너무나도 잘 흘러 갔다. 석달이란 시간동안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되뇌이면서 시험 준비를 했고, 6월 드디어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 이번에는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대로 필기 합격을 하고 최종 면접까지 여유있게 합격을 하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최종합격 후 소방서에 퇴사를 알려야 할 때가 되었다.
아직도 마지막 출동하던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새벽이었고, 아파트 20층정도에서 난 화재 였다. 고층 화재 때는 엘레베이터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소방호스를 들고 1층부터 20층까지 뛰어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밖에서 보았던 화재는 강렬했고 마지막 출동일 수 있는데 이거 큰일 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16층 정도에서 다른 구조대 대원들이 내리는 게 아닌가? 젠장 16층정도 까지는 타고 가도 되는 거였구나. - -;;;
그리고 20층까지 헉헉대고 뛰어가니 팀장님과 팀원들이 소화호스를 들고 불이난 집으로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화재가 너무 커서 문을 열기도 어려웠다. 문을 잘못 열면 백드리프트라고 해서 내부 화재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문을 열고 낮은 자세로 물을 뿌리면서 내부로 들어갔다. 거실, 방 하나 하나에 불을 끄고 잔불을 마지막으로 정리 하였다. 우리 팀이 화재 진화 후 밖으로 나오는 데, 그집 아들이 안에 부모님이 계시다면 미친듯이 화재현장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아들이 집에 방화를 낸 거였고, 다행히도 그때 집에 아무도 없어 다친 사람도 없었다고 하여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소방서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옷에서 나는 탄내와 새벽 공기를 동시에 맡으며 지난 5년 동안의 수험생활, 짧지만 강렬했던 소방서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앞으로의 미래가 겹치면서 그동안의 고통이 날아가는 듯 했고,
새벽 어스름 같이 희미하지만 밝은 무언가가 내게 찾아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며칠 뒤 악명높은 팀장에게 개인적인 이유로 소방공무원을 사직하고자 한다고 말하였다. 그에게도 조금은 충격이었을까? 아니면 예의상 멘트였을까? 몇번이고 사직을 만류하였다. 첨부터 그렇게 팀원들에게 인정을 보여줬다면 소방서 생활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게 리더의 몫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동기들과의 작별 인사를 끝으로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직장생활을 마쳤다.
이후, 교육청 교육행정직 시험 최종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2주간 연수원 교육을 받았다. 교육청은 여성 공무원의 비율이 60프로 이상인데 그래서 그랬는지 2주간의 연수원 교육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고 교육 후 동기생들과의 음주가무는 고된 시간에 대상 보상 마냥 즐겁고 재미난 시간으로 기억되곤 한다.
(나는 연수원 연수 후 발령전까지 이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짧게나마 다녀왔고 그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 인생에 다른 면이 존재할 수 있었겠구나 하는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나중에 적어봐야 겠다.)
그러고나서 다음해에 초등학교 행정실에 발령이 났다. 거기서 부터 본격적인 지방교육행정직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 1.1자로 학교 행정실에서 교육청으로 인사발령이 나, 너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톱니바퀴 마냥 하루하루 살다보면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그래도 우선 일하면서 살아야 하겠지요.
시간이 될 때 마다 이렇게 제 경험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적고 나면 별 것 아닌데 글쓰기가 참 힘드네요.
감동, 재미, 유익하진 않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 위 사진은 구글에서 캡쳐한 호주 멜번에 플린더스역 사진 입니다. 제겐 너무나도 좋은 추억으로 남는 곳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