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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쌤송 Jun 10. 2022

대만으로 갑니다.

마흔둘에 불혹하지 못 해 미안하다.

1월 초에 글을 쓰고 5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교육청에서 근무하면서 이런저런 업무를 하였고, 그러다가 7급 승진을 하였습니다. 또, 제가 계속 원했던 재외한국학교에 채용되어 앞으로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일로 인해 시간도 없었고, 브런치에 무슨 글을 적어야 하나, 왜 이런 걸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하며 지내왔습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 생각해보지만 복잡한 인생만큼이나 그럴싸한 답을 찾진 못 했습니다. 그냥 적고 싶은 때 적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적으면 어떨까 싶네요.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고 저도 위안을 받는 다면 그것 참 좋겠다 싶습니다.



첫 발령 때부터 하나씩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가, 옛날이야기 적기가 쉽지 않고 재미도 없을 것 같아 조금 적다가 말았습니다.


공무원이 되어 일하고 산다는 것은 크게 보면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사고 치지 않고 어느 정도 상사 비위도 맞춰주고 본인 업무만 잘 처리하면 매월 정해진 봉급이 나오고, 일정 때가 되면 6급 정도까지는 무난히 승진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재미가 없어지는 때가 오지요. 일을 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는 순간도 많이 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쏟았던 시간이 아까워 참고 일 합니다.

저만 그런 거 일 수도 있어요(제가 다른 사람 속을 알 순 없으니까요), 그런데 주변에 같이 있었던 분들을 보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다 하시는 분들이 있는 걸로 봐선 저만에 문제는 아닌 게 분명하고, 그걸로 위안을 삼고 살고 있습니다.


어찌 됐던 저는 학교와 사업소에서 근무를 하다가 역마살 때문인지 이곳이 싫어서였는지, 삶이 무료해서였는지 나의 의지를 바탕으로 살고 싶어 재외 한국학교에 문을 두드렸고,

4년 동안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에 있는 한국학교에서 일을 했습니다.

일과 여행을 함께 하며 타국에서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 계획했던 것들은 대부분 실행해보지도 못하고, 시간은 흘러 2018년도에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학교와 교육청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마흔 두 살이 됐네요. 맘 속에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지막(??)으로 시도해 봐야 할 때라 생각이 들었고,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공무원으로만 살다가 끝나겠구나 하는 암울함이 싫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무원으로 일하는 삶이 암울하다는 것이니 오해하지 마세요, 밤낮으로 열일 하시는 존경받을 만한 공무원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승진과 함께 재외 한국학교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제 저는 대만 타이베이 한국학교에서 일을 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요... 그리고 저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이룰 수 있을 까요?

삼십에는 뜻을 세우고 사십에는 마음이 흐려지거나 무언가에 홀리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마흔둘에 뜻을 세우고 마음이 흔들리는 저는 무엇일까요?

곧 여기는 정리를 하고 대만으로 출국합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할까 생각하다가 마음가는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자주 일상을 공유해보고 싶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고~ 짜이찌엔~


  [사진 출처 : 구글, 지우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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