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들빈 Jun 23. 2024

고요한 집에서, 우리만의 행복을

서두름 없이 함께하는 일상


회사 프로젝트 연휴가 시작된 지난 주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2주 이어진 야근과 철야에 컨디션은 바닥이었고 그저 한없이 누워있고만 싶었다. 남자친구는 아침에 일정이 있어 늦은 오후까지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방 안에서의 시간은 평화로우면서 적막했다. 3시쯤 남자친구가 귀가했고, 저녁식사를 위해 외출 준비를 했다. 편한 차림으로 함께 집을 나섰고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 남자친구가 지갑을 놓고 나왔다며 집으로 뛰어갔다. 전화를 걸었더니 아무리 찾아도 지갑이 안 보인다며 집으로 와달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 방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처럼 바닥에 장미 꽃잎이 뿌려져 있다거나 분위기 있는 노래가 흘러나오진 않았다. 방안에 들어서자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테이블이 선물들로 꾸며져 있었다. 남자친구는 초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급하게 사 왔다며 아쉬워했다. 나는 앙증맞은 양초로 하트 모양을 만든 게 귀엽다고 말했다. 내가 집으로 들어올 동안 급하게 테이블 세팅을 하고 양복까지 갈아입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서있는 모습에 그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프러포즈를 준비하냐는 꽃집 사장님의 말에 쑥스러워서 '네, 비슷한 거예요' 하고 애써 대답것, 자신이 좋아하는 윤종신의 노래 가사를 편지에 담아낸 것, 나의 야근이 길어지자 타이밍을 잡느라 고민했다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내게는 프러포즈였다.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사랑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부족한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더해갈수록 고마움과 미안함, 서운함과 애틋함 같은 감정의 요소들이 생겼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런 걸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사랑이라 부르나 보다. 편지의 내용처럼 몇 번의 우연이 만든 인연이지만 서로를 귀하게 생각하는 태도와 서두르지 않고 우리만의 행복을 만들었던 순간들이 쌓여 오늘을 만든 것 같다. 이사한 지 5개월, 이 집에서의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이 흐르는 빵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