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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빈 Jul 08. 2024

기억을 닮은 집

햇살과 풍경이 좋아서 이사한 동네


어린 시절 동네 근처에 주공 아파트가 있었는데 학교 친구들 대부분 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나는 몇 블록 떨어진 빌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다른 친구들이 은근히 부러웠다. 그런 마음을 아셨는지 생일때면 부모님이 반 친구들 몇 명을 집으로 초대해서 떠들석한 홈파티를 열어주셨다. 가끔 아빠 힘을 빌려 동네 피자헛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실컷 먹고 놀기도 했다. 생일에 가면

직원들이 이벤트로 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 촬영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레스토랑에 데려다주던 아빠가 얼마나 보이던지. 아직도 피자헛 레스토랑이 있었던 동네를 지날 때면 푹신한 빨간 소파부터 그때의 추억이 우르르 쏟아진다.



서른이 되어 가족 품을 떠나 낯선 서울 동네로 이사를 왔다. 추운 겨울엔 찬바람이 솔솔 통하는 30년 넘은 복도식 구축아파트에 살고 있다. 내게는 첫 독립이자 예비 신랑과 함께 살고 있는 신혼집이다. 겨울에 이사를 와서 벌써 한여름을 지나고 있다. 작은 엘리베이터 두대가 있고 집 앞엔 요즘엔 흔하지 않은 모래놀이터가 있는 풍경이 옛날에 부러워했던 주공 아파트를 꼭 닮았다. 그때의 주공단지는 재건축되어 신축 아파트 대단지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도 재건축 분위기로 곳곳에 플래카드가 보이고 분위기가 조금은 어수선하다.



신혼집 치고는 좁은 듯하지만 그래도 살뜰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주말 아침이면 아빠가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는 풍경이 흔한 동네다. 늦은 오후 노란 베이지 톤의 햇살이 아파트 복도를 사선으로 내리쬐는 모양이 참 포근하다. 창문이 빼곡한 아파트 단지가 답답하지 않은 것은 초록이 많아서일까. 녹색의 계절인 지금 아파트가 버텨온 세월만큼 나무와 풀이 무성하다. 흐린 오늘, 녹음이 짙은 풍경을 기다리며 이곳에서의 첫여름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중이다. 나의

어릴 적 동경은 그때만큼 선명하지 않지만 지나온 계절의 색을 잔뜩 머금어 노르스름한 연둣빛이었다가, 짙은 초록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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