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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Jun 29. 2020

무형의 즐거움

2020년 6월 18일

지난주의 일정은 사람을 조금 지치게 하였다. 만나거나 대화 나눈 사람들에게 제주도라도 다녀오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날은 덥고 여름은 일찍 찾아왔으나 짬을 내서 걷지 않으면 계절의 풍미를 오롯이 즐기기는 어렵다. 그사이  들여놓을 것이 현재로서는 없어 뵈는  스튜디오에도 크고 작은 물건이 도착한다. 브리타 Brita 필터형 정수기라든지, 플로스 Flos 토이오 Toio 플로어 램프 floor lamp 같은 것들.

오늘 오전은 반드시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산책이라는 단어가 주는 싱그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땀은 흐를 것이고 도로에 차는 가득할 것이며 출근하는 이들과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 시작한 사람들이 곳곳에 넘실거릴 것이다. 내게도 메시지라든지 전화 같은 것도  것이다. 여전히 준비하고, 조사하고, 정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일은 많다. 하나 예를 들면, 오는 월요일부터 새로운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래도 이번 주는 조금 숨을 돌린다. 주말에는 한주  서울패션라디오 Seoul Fashion Radio 녹화를 하고 여전히 방문하지 못한 서점 산책 BOOKWALK  책을  들여놓으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주말, 특히 토요일은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과 서울 곳곳을 지칠 만큼 누비고,  이야기와 술이 있는 저녁과 밤을 보냈으니까.

인생은 즐거운 일이 한가득한 사이에 벌어지는 여정이 아니라, 벌어지는 일들 사이에 하나씩 갈무리하고 쳐내는 식이 아닌가, 종종 생각할 때가 있다. 선호 형은 최근 들어서 진지하게 제주도에 집을 사라고 이야기한다(어차피 평일에는 일만 하니까, 굳이 서울이 아니어도 되는 데다 그런 식으로라도 쉬어야 한다면서). 엉뚱한 망상으로 치부하면서도 공간이 분리한 삶의 태도 또한 존재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기울이게 되었다. 온갖 물질들, 빠르게 흐르는 일과 바쁜 사람들, 코로나19  비일상의 경계가 슬며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세상이 너무나도 가까이 우리 주변에 있다.

수납함 옆에 걸린 무수한 모자를 보았다.  옆에 가득 놓인 형형색색 스니커즈를 보았다. 발은  , 머리는 하나. 사들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은 사실. 들이지 않고 남는 종류의, 이를테면 무형의 즐거움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든다. 물질을 소유하지 않고도 기쁨을 느끼는 때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여름의 목표는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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