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he Essay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 Sukwoo Jun 28. 2020

꽃 사진

2020년 6월 18일

아침 여덟 시를 넘자마자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아빠였다.


이 시간에 뜬금없다. 가족 단톡방 같은 것도 없는 우리 집이다. 무슨 일이지, 하고 보니 꽃 사진이 있다. 오래된 스마트폰으로 찍었을 것이 분명한, 아름다운 분홍빛을 내는 몇 송이 꽃이 푸르고 성성한 잎사귀들과 함께 있는 사진이다. 부모님이 정성 들여 가꾸는 화분 중 하나에 꽃이 핀 것이다. 그 꽃 사진을 아무런 메시지 없이, 달랑 사진만 한 장 보내셨다. 꽃이 예쁘네, 라고 건조하게 대꾸하고 건강 잘 챙기며 일하라는 말에 나도 동일하게 대답하고는 부자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얼마 전 집에 갔다가 아빠가 웬 낡은 사진 두 장을 확대하고 코팅하였다며 보여준 적이 있다. 아빠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사진과 할머니의 젊은 시절 한복 차림 사진 몇 장이었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전사하셨다. 이미 아빠는 할아버지의 나이를 진작에 뛰어넘었다. 이제는 나보다도 훨씬 어린 할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으로 각인하며 그의 얼굴에 아빠의 얼굴이 고스란히 남았다고 새삼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그런 나이가 된다. 할 일이 많고, 가족이 생기고, 나이를 먹었다는 걸 실감하며 부모님의 나이를 함께 떠올린다. 가끔 스스로 잘살고 있는가 돌아볼 때, 사회적인 성취나 일의 보람이나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어느 순간 놓았다는 걸 자각할 때가 있다. 결국은 효도하자는 결론을 내려는 시도는 아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왕왕 잊곤 하는 삶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되뇔 때가 있다는 뜻이다.


그 어설픈 꽃 사진은 저장해두었다. 내가 공을 들여 찍은 어떤 꽃의 모습보다 울림이 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