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he Essay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ng Sukwoo Jul 04. 2020

우리는 타협을 한다

2020년 5월 5일

결국 시간은 짧기 때문에 가능하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 이런 전제는 틀리지 않았다.

​돌아본다. 지금 하는 것들을. 돌아본다. 그간 벌고 소비한 것과 모은 것들을. 돌아본다. 그간 내가 행한 것들로 만나게 된 사람들을.

​닥친 지금 눈앞에는 '이런' 것들과 '저런' 것들이 함께 있다.

​막상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일들. 험한 앞날이 어느 정도 예견되지만, 금전적으로 풍요로워지는 일들. 돈은 아니어도 속에서 이끌리는 일들. 그리고 아예 '일'이 아닌 종류의 일들.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 세대는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은퇴 후' 같은 아직은 먼 계획들이란, 부모님 혹은 나이 많은 선배들 세대처럼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혹은 세 번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보고 지금을 이 악물고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삶을 단순히 한쪽 면만 보고 지지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하루가, 그 하루가 고된 이들이 사실 주변에 몹시 많을 것이다.

​살면서, 일하면서 느끼는 단 하나의 균등한 감정은 그 어떤 것에도 결과적으로 배울 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순간도 마찬가지였다(결국, 다시 그쪽에 발을 들이지는 않게 되었으니까). 가능하다면, 아니 가능한 한, 아니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으로서 지금, 복잡한 기분을 겪는 사람들은 꿋꿋하게 '버티며' 하는 일과와 일의 사이에 일종의 틈새를 만들고, 유지하고, 조금씩 벌여나가는 작업을 놓지 말아야 한다.

​밤의 택시에서, 멍하니 더 길게 앉아서는 다리가 저리는 어딘가의 화장실에서, 술자리 중간에 유독 달이 예쁘게 떠 있고 바람은 청량했던 담배 태우는 시간에, 문득 메모장에 적었던 해야 할 일들을 타협하지 않고 하나씩 실현하기 위한 즐거움을 찾자고 마음먹고는 하였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허황하고, 소박하고, 작고 길들지 않은 종류의 꿈을, 항상 그 대척점에 있는 - 물질의 소유로서 이뤄낼 수 있는 - 꿈과 뒤범벅한 희망과 욕망을 동시에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겨울이 봄이 되고, 봄이 다시 여름으로, 그렇게 몇 달씩 휙 누가 떼어낸 것처럼 사라지는 동안 희미해지는 것들에 보통은 타협을 한다.

​우리는 타협을 한다.

​가능하면, 아니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얘기하지 않고서, 자연스러운 어떠한 흐름으로서 저항하여 이뤄낸 후 그 터전을 오롯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어릴 때, 그러니까 지금보다 많이 어릴 때 어떠한 어른이 될까 생각해본 적은 물론 많이 있었다.

​그것이 지금인가? 대답하기 어렵다. 그때의 꿈이 지금과 동일한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감각들은 유지하고 싶다. 경험의 여부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실감의 벅찬 감정을 말 그대로 실감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모험은 떠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안에서 얼마나 툭, 툭 하고 부딪히느냐에 따른다고, 그래서 그 은밀한 주문들을 반영한 결과가 조금씩 퍼져나갈 때 비로소 깨어 있다는 감정을 번지는 힘이 된다고, 아직 믿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형의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