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 슬 Nov 16. 2018

아내의 일기장 1

순두부찌개 먹자.

  남편은 친한 후배의 친오빠였다.

후배와 말장난하듯이 군대에서 전역하지 얼마 안 된 오빠를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남편을 소개받게 되었다.

남편과 만나기 전, 서로 사진은 보았지만 만나지 않은 채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둘 다 카톡보다는 전화를 좋아해서 전화를 하게 되었는데, 나름대로 이야기가 잘 통해서 하루에 2~3시간씩 통화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그걸 좋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좋았고, 남자가 여자를 처음 만날 때 안 좋은 게 뭐가 있으려나 싶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일주일간 연락했고,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무 무섭게 생겨서.

그런데 첫 만남에 그동안 연락해온 것도 있었고, 도망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남편과 만나기 전 통화하면서 처음 만날 때 뭘 먹을까 얘기를 했었다.

뭐가 먹고 싶냐는 남편의 질문에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내 말에 웃으며 첫 만남에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다고 한 여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그날 처음 만난 느낌은 '얘랑은 남자친구가 아니어도 친구로 지낼 수 있겠다.'였다.

그냥 편안했고 재밌었다.


 처음 만난 후 다음날, 남편은 나에게 카톡으로 '오늘 또 나 놀아주라.'라고 말했다.

나는 찾아오라 했고, 그렇게 한 번 더 만났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을 거의 내리 만났다.

일주일이 지나자 남편은 나에게 언제 사귈 거냐고 물었다.

나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벌써 사귀자고 하냐고 되물었다.

남편은 그렇게 날 따라다녔고, 사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나도 나 좋다는 사람을 만나보겠다는 마음으로 사귀게 되었다.

그래서 벌을 받았나? 우리는 이혼했다.


 처음 만날 때 나는 데이트 후에 헤어짐을 절대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기숙사 점호시간에 맞춰 남편이 타고 갈 버스가 오면 빨리 집에 가라며 되돌려 보냈고, 남편은 서운해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두 달을 만나다 보니 어쩐지 나도 모르게 헤어짐을 아쉬워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도 남편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남편을 만나면서 나는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나는 도저히 이 사람이 나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는데, 이 사람은 계속해서 나에게 사랑 표현을 하고 나를 쫓아다니고, 내 말이라면 대부분 수용해주고 그대로 해주었다.

이 사람이 나를 왜 좋아하는가에 대해서는 결혼식 당일도, 결혼 후에도 그리고 이혼한 지금도 정말 왜 나를 좋아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사람이 날 좋아해 주었던 마음이 진심이었음은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랑을 처음 받아봐서 익숙지 않았고, 그래서 남편을 의심하고 벽을 세워뒀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계속된 표현에 나도 모르게 벽을 허물고, 어느 순간 나도 그 사람에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헤어질 때에는 집에 안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내 기숙사 점호 시간 전까지 항상 남편이 퇴근 한 후에 만나서 데이트를 했다.

가끔은 내가 남편 회사에 간식을 들고 찾아가 데이트를 하고 오기도 했다.


 내 생일에는 꽃과 목걸이 팔지 케이크를 가져다주었고, 아무 날이 아니어도 지나가다 생각나서 샀다고 화장품을 선물했다.

내가 사용하는 화장품을 기억하고 선물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해서 전해줬다.

기숙사에서는 남편이 사랑꾼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남편에 대한 평판은 나의 자존감을 세워주기도 했다.

내가 그만큼 사랑받는 여자라는 거니까.


 그런데 우리 사이에 얼마 있지 않아 걸림돌이 생겼다.

우리 사이를 질투하는 아가씨.

나는 매번 별거 아닌 듯한 이유로 질투하고 이간질하려는 아가씨가 이해되지 않았고, 결국엔 남편에게 그냥 헤어지자고 했었다.

그날 저녁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었다.

"얘랑 싸웠니? 얘가 웬일인지 소주 5병을 먹고 자고 있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얘가 너 많이 좋아한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떠니?"

부담스러웠다. 나는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남편은 그 다음날 나에게 다시 연락했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때 헤어졌어야 했는데,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남편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잘 지냈고, 아가씨의 일은 당분간 무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은 여전히 사랑꾼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과 나는 그때 참 좋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