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내버려 둬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꿀, 퇴근시간 이후는 다이아몬드와 같다’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즐거운 점심시간과 업무(수업) 시간 이후가 기다려지는 건 비단 직장인뿐 아니라, 학생 프리랜서 등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퇴근 시간 이후 = 다이아몬드’라는 말은 당연히 동의하지만 ‘점심시간 = 꿀’은,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매일 점심식사를 같이 해야 하거나, 반대로 고정적인 식사 멤버가 없어 매번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쉬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현재 나는 첫 번째 경우인 ‘그다지 함께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매일 점심식사를 같이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팀원들이 싫은 건 아니지만, 일과 중 유일한 자유시간이라고 볼 수 있는 점심시간까지 타인의 간섭을 받고 휴식을 취할 수 없음이 슬프게 느껴진달까?
문득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 계산해보니 7~8시간 수면모드, 회사에 있는 시간 9~10시간, 왕복 이동시간 2시간 빼고 나니,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4~6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 4~6시간 중에도 씻고 밥 먹고 외출 준비하고 화장 지우고 등 필수적으로 꼭 소요되는 시간까지 제해보면 나만의 자유시간 또는 무언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은 것이 아닌가.
회사에서의 시간은 정말 정신없이 흘러간다. 내일 출근해서 해야 할 일을 전날 계획해놓더라도 당일에 중간중간 끼어드는 이슈들을 포함하면 하루 8시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싫어하는 야근을 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기에 점심시간만큼은 숨을 돌리며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좋아하는 취미 (책 읽기)를 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조용히 밥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레 고개를 든다.
가장 힘든 부분은 바로 팀원들과 점심을 먹을 때마다 ‘무슨 이야깃거리를 던져야 할까’라고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관심도 없는 질문을 던지고 답해야 하는 '노동'이다. ‘주말에 뭐 하셨어요?’, ‘아, 결혼 준비는 잘 되어가세요?’, ‘남자 친구랑 싸웠던 일은 해결되셨어요?’ 등……고개 숙이고 밥만 열심히 먹을 수 없으니 대화 주제에 맞춰 적절히 내 얘기를 하며 별로 웃기지 않은 멘트에도 깔깔거리는 리액션을 한다. 더군다나 구내식당이 없어 매번 메뉴 선택을 해야 하는 것 또한 고역이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이제부터 점심을 혼자 따로 먹겠다’라고 선언했더니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아, 다이어트를 좀 해보려고요. 이제 여름이 다가오잖아요. 저는 샐러드 따로 싸와서 먹을게요’라고 둘러대니, 살 뺄 데가 어디 있다고 다이어트냐, 원래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저녁을 안 먹어야 살이 빠지는 거다. 점심 그렇게 대충 먹으면 힘 빠져서 일 못한다 라며 어떻게든 같이 먹게 하려고 모두 힘을 모아 설득하길래 어쩔 수 없이 몇 번은 더 같이 먹었다.
그 이후 며칠이 지나 '따로 먹기'를 다시 시도했더니, 이제는 팀장님이 직접 쓴소리를 하신다.
‘OOO님, 업무시간에는 서로 일 때문에 바빠서 개인적인 이야기도 잘 못하는데 점심 정도는 팀이랑 같이 먹으면서 친밀한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 정말 특별한 이유 아니면 같이 먹지.’라는 얘기에 이제 더 이상 점심을 혼자 먹는다는 말은 꺼낼 수 없게 되었다.
직장생활, 사회생활의 어려운 인간관계 문제는 개인마다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 라고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에서 ‘개인의 요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매너/애티튜드가 좋고 나쁨을 논할 수 있는 문제인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에도 명백히 나와있듯이, ‘점심시간’ 1시간은 ‘휴게시간’에 해당하며,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는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 감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2013.3.19, 근로개선정책과-1773)
아직까지 국내 대부분의 회사 조직 문화 하에서, 점심을 따로 먹는 사람은 사회성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점심시간을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업무시간에 끊임없는 협업,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맛있는 밥,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혼자 잠시라도 리프레쉬하는 시간을 갖게 해 달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인 걸까?라는 생각이 아직도 들지만 당분간은 계속 현재의 팀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을 예정이다.
'그래, 하루에 한 끼 정도는 팀원들과 먹을 수 있지 뭐'라고 스스로와 타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