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맡은 일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있습니다.
공모전에 넣을 웹툰 스토리를 쓰던 중, 전화가 왔다.
재가센터 관장님이었다. 급해서 그러니 새 요양보호사를 구할 때까지 K 할머니를 살펴봐 달라는 제안이었다.
- 현장에서는 어르신이라 표현하지만, 여기서는 할머니라고 표현하겠다
엄마 때문에 겸사겸사 딴 자격증이었고, 자격증이 나오자마자 가정 요양을 위해 등록한 재가센터에서 아르바이트처럼 첫 제안이 들어온 거였다.
K할머니는 치매 초기를 앓고 있다고 했다.
했던 말을 또 묻고 또 묻는 것 외에는 건강도 인지도 좋은 분이라고 하셨다.
그 외 여러 정보를 들은 후, 고민 끝에 월수금만 임시로 하기로 결정한 다음 스케줄과 주소지를 받아 며칠 뒤 차를 끌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자격증을 딴 후, 그것도 3월 말에 실습이 끝난 후 처음 가게 된 방문 요양이었다.
K할머니가 사는 곳은 도심에서 꽤 먼 곳이었다.
논과 밭이 있지만, 생활환경은 신식인 현대적으로 발전한 작은 농촌이었다. 자녀들은 주말마다 K할머니의 밭을 가꾸러 온다고 했다. 즉 평일엔 대부분 할머니 혼자 집에서 지낸다고 했다.
아침 9시 50분.
할머니 댁에 도착하자 2층 주택이 보였다. 넓은 마당 옆엔 예쁜 꽃들로 꾸며진 화단이 있었고, 집 주변 밭에는 연세 많은 할머니 한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널찍이 떨어져 분주히 풀을 뽑고 계셨다.
나는 마당에 차를 주차한 후 2층으로 향했다.
딩동-
현관문 옆 초인종을 눌렀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혹시나 해서 현관문을 당겼더니 스르륵 열린다.
조금 긴장한 상태로 안에 들어갔지만 K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들어오기 전 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 할머니 한분이 생각났다.
서둘러 밭으로 가 굽은 허리로, 맨손으로 풀을 뽑고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는 목에 걸려있는 폴더폰이 땅에 닿는 것도 모르고, 손에 흙을 잔뜩 묻힌 채 풀을 뽑고 있었다.
더운 날이었다. 할머니 얼굴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어르신...?"
"누구세요?"
할머니는 땀에 범벅된 얼굴로 날 올려다봤다. 도대체 언제부터 밭일을 했던 건지 가늠도 되질 않았다.
"저 요양보호사입니다. 어르신. 따님이 보내서 왔어요."
"우리 딸이요?"
"원래 오던 애엄마는요?"
"일이 생겨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차근차근 전부 다 설명드린 후, 일사병이나 탈수 증세를 막기 위해 급히 할머니를 도와 2층집으로 향했다.
"근데 내가 왜 밖에 나왔어요? 자식들이 혼자 있을 때는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할머니는 자식들 당부가 걱정 됐는지, 심각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치매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절대 안 됐다.
"아마 풀이 많이 자랐을까 봐 걱정됐나 봐요. 어르신."
"세상에."
할머니는 안심이 된 건지, 아니면 상황이 황당한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었다.
계단을 하나씩 함께 오르는 동안 할머니를 부축하던 내 등에선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요양보호사 실습을 나갔던 주간보호센터가 떠올랐다.
손이 무척이나 차가웠던 아흔 살의 한 할머니가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