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살았어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있습니다.
2024년 3월. 엄마는 당뇨성 신부전으로 5년을 넘게 고생하다 투석 환자가 됐다.
투석 직전까지 여러 번의 입원을 반복했던 엄마는 '경도인지장애' 판정도 받았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요독이 뇌에 영향을 끼치면 인지가 나빠진다고 했다. 다행히 투석 후 한 달이 지나자 엄마의 건강과 인지는 놀랍게 좋아졌다. 그렇다고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투석한 첫 달은 일주일에 2번을 갔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날 무렵에는 다른 투석 환자들처럼 일주일에 3번을 갔다. 슬프게도 형제 중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오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프리랜서이자 비혼이었기 때문.
그러다 주변에서 엄마의 장기요양등급을 받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라고 말해 줬다. 자격증을 따두면, 엄마의 간병비를 국가에서 일부 지원받을 수 있다란 이유에서였다. 고민하다, 2024년 12월부터 요양보호사 야간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평일 낮에는 작업을 하거나 엄마와 함께 투석 병원을 갔다. 같은 날 밤에는 요보사 수업을 들었다.
추운 겨울에 시작해서 봄이 막 오던 3월 초에 끝난 이론 수업. 그리고 바로 한 달간의 실습이 이어졌다. 그렇게 처음 간 실습에서 아흔 살의 A할머니를 만났다. 바로 주간보호센터에서.
보통 주간보호센터는 노인 유치원으로 불린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듯, 부모님을 맡기기 때문.
오전 9시 토요일.
같은 교육원 실습생들과 한 시간 정도의 센터 정리를 끝내자, 어르신들이 그룹별로 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나와 실습생들은 연습대로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어르신은 같이 인사를. 어떤 어르신은 낯을 가렸다. 또 다른 어르신은 못 본 척 스쳐 지나갔다. 알고 보니 치매 진행 상태에 따른 차이였다.
사실 책이 아닌 실전에서 치매 어르신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공부 좀 했다고 한 두 시간이 지나자 치매 어르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금씩 해석되기 시작했다. 좋고 싫음의 표현도 조금씩 말이다.
그러나 치매가 심한 어르신들은 시간이 흘러도 해석이나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틈에 있지만 외딴섬으로 존재하는 느낌도 가시질 않았다. 마치 각자 자신의 무인도를 만들어 그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도 짙은 안갯속에서.
이유는 치매가 심한 어르신들은 우두커니 혼자 멍하니 앉아 있거나, 센터 내 프로그램이 돌아가도 엉뚱한 곳을 보며 앉아 있거나, 당신께서 하고 싶은 것만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치매라는 병은 보는 이도, 겪는 이도 너무 외로운 병이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외롭게 외딴섬처럼 살다 죽음을 맞게 되는 병 같다고.
물론 치매 어르신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치매 어르신들은 감정이 있었다. 말로는 못해도 좋고, 싫고, 고맙고, 기쁘고, 슬프고, 외롭고, 화나고 등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어떤 식으로든 표출했다.
그날 센터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집중 케어가 필요한 아흔 살의 어르신 한 분을 내게 부탁했다. 백발에 창백한 얼굴, 창백한 손이 인상적인 A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치매는 초기로 현재와 과거가 섞여 종종 혼선이 생기는 정도였다. 문제는 몸이 너무 노쇠해서 온몸에 힘이 없었다. 휠체어가 아니면 이동할 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수저를 들기도 힘든 체력이었다.
"너무 오래 살았어."
할머니는 내게 인사처럼 말하셨다. 그리고 자주 말하셨다. 어떨 때는 지친 얼굴로, 어떨 때는 화난 얼굴로, 어떨 때는 편안한 얼굴로 여러 번. 너무 오래 살았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내가 요양보호사 아르바이트로 처음 맡게 된 K할머니는 자신의 나이가 아흔둘이라고 말해줬다. 첫 실습날 주간보호센터에서 봤던 아흔 살의 할머니에 비하면 체력이 월등하게 좋으셨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는 할머니를 부축해 2층을 올랐다. 허리가 굽어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가 벅찼는지, 할머니는 두 팔로 계단을 짚으며 올랐다. 할머니는 그런 와중에도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밭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질문이었다.
"누구라고요?"
"요양보호사요. 어르신 도와드리려고 왔어요."
"어디서 왔어요?"
"00에서요."
"세상에 그 먼 곳에서요?"
"안 멀어요. 어르신. 20분이면 와요!"
할머니를 거실 소파에 앉힌 후, 화장실에 가서 씻을 기운이 없다는 할머니를 대신해 물티슈로 두 손에 묻은 흙을 닦아냈다.
"근데 내가 왜 밭에 나갔을까. 기억이 안 나. 자식들이 나간 거 알면 화낼 텐데."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방금 전 일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눈을 뜬 후 다시 내게 물었다.
"누구라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