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야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있습니다.
"누구라고요?"
할머니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느낌상 처음 보는 것처럼 묻는 게 아닌, 내가 아까 밖에서 했던 소개들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묻는 것 같았다. 꽤 익숙한 모습이었다. 엄마의 몇 년 전 모습과 흡사했으니까.
2년 전 신부전 말기였던 엄마는 몸에 쌓인 요독 때문인지, 아니면 단백질 제한 때문에 살이 너무 빠져서인지 인지가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중이었다. 혼자서는 훌쩍 시장을 다녀올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엄마는 내게 했던 말을 묻고 또 묻기 시작했다. 작업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말이다.
처음엔 몸이 아프고 불안하니까, 묻고 또 묻는지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요일과 날짜 그리고 계절에 대한 인지에도 문제가 생긴 상태였다.
병원에 가 검사를 하니 엄마의 병명은 경도인지장애였다. 보통은 치매 직전의 단계라고 알려져 있지만, 엄마의 경도인지장애는 특수한 경우였다. 투석을 시작하면서 인지가 나아지고, 치매처럼 반복해서 질문하던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투석실 과장님 말로는 뇌에 쌓인 요독이 투석으로 빠져나가면서 좋아진 케이스라고.
잠시 엄마 생각을 하다, 할머니의 얼굴에 땀이 흥건한 걸 보고는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밭에서 땀을 잔뜩 흘리다 온 할머니가 탈수 증세로 쓰러질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자 두유와 뉴케어 같은 영양 음료가 꽉 차 있는 게 보였다. 일단 시원한 물 한 컵과 두유를 챙긴 후 소파에 앉아있던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새 할머니는 기운이 빠졌는지,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르신? 아까 밭에서 땀 많이 흘렸으니까 물부터 드세요.”
“물이요?"
할머니는 기운 없는 얼굴로 날 보다 곧 힘없이 웃었다.
"목이 말랐는데 고마워라."
갈증이 심했는지 한 번에 쭉 들이키는 물.
분명 밭에서부터 갈증이 있었을 텐데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치매 때문인 건지, 아니면 낯선 나의 등장 때문인 건지 알 방법은 없었다.
할머니가 두유를 다 마신 후, 컨디션이 조금 나아진 걸 확인한 난 그제야 내 소개를 다시 건넸다.
"어르신. 저는 요양보호사예요."
"요양...?"
나는 큰소리로 단어를 분절해서 읽었다. '요양보호사'라고. 하지만 발음이 어려웠는지 할머니는 '요양'까지 따라 하다 금세 포기했다. 어쩌면 치매 초기라 이 생소한 단어가 잘 외워지지 않는 걸 수도 있었다.
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사이, 할머니는 당신이 요양보호사란 단어를 전부 따라 말하지 못한 걸 머쓱해하고 있었다.
사실 교육원에서 치매 이론 공부를 하긴 했지만, 실습 때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느꼈었다. 이유는 어르신들마다 환경이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면이 있어서였다.
고민 끝에 기억하기 쉽게 설명하자고 생각했다. 쉽게 설명하면 기억에 잔상처럼 남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쉽게 말하면 할머니 눈높이에 맞게 말하자는 방향 전환이었다.
나는 다시 내 소개를 했다.
00에서 왔으며, 따님이 보냈고, 월수금만 할머니를 도우러 오기로 했다고. 근데 아까보다 쉽게 설명했는데도, 할머니의 표정이 더 어두워져 있었다. 내가 혹시 실수를 한 걸까? 란 걱정에 할머니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어르신?”
"딸이 보냈다고 했어요?"
"네, 어르신."
그러자 할머니는 심각한 얼굴로 변했다.
"그럼 돈은 누가 내요? 우리 딸이 내요? 얼마나 많이?"
할머니의 자식 걱정에서 비롯한 심각함이었다.
솔직히 신기했다.
치매 때문에 기억들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자식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그게 부모의 마음인 걸까?
대답을 고민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문제는 사실대로 말하면 할머니의 기분이나 정서에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것. 즉 어차피 잊어버리고 또 묻게 될 기억이라면, 듣는 순간 마음이라도 편해지는 게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
"어르신 이건 나라에서 내는 거니까 아무 걱정 마세요."
"나라에서요?"
"네. 진짜예요.“
평균적으로 방문요양 비용의 80%는 국가에서 지원해 준다. 그러니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라에서 나 같은 늙은이한테 돈을 왜 줘요?"
상상도 못 했던 질문이라 당황스러웠지만, 바로 임기응변으로 답했다.
"그동안 어르신께서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고 주는 거래요."
"진짜요? 그럼 정말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야."
나야말로 다행이었다.
그때 할머니 목에 걸려있던 폴더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전화받는 법이 헷갈렸는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뭘 눌러야 하는지 기억이 안 나네..."
나는 당황한 할머니에게 초록색 통화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알려준 후 귀에 폰을 가져다 댔다.
"엄마?"
할머니의 딸이었다.
2-3분 간의 통화 후 할머니는 여느 부모들처럼 밥 잘 먹고, 일 잘하라는 말을 다정히 건넨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갑자기 민망해졌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날 바라봤다.
"밭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또 나갔어. 이거 딸이 알면 혼나요. 나가면 큰일 난다고 말했는데 내가 또 나갔어.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고."
그러다 잠시 뜸들이다 헛헛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올해 아흔둘인데... 너무 오래 살았어. 너무 오래.”
주간보호센터 실습 때 뵀던, 아흔 살 할머니와 같은 토로였다.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