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치매여도 아흔이어도

오래 사는 게 죄는 아니길

by Chang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있습니다.




"내가 올해 아흔둘이야. 오래 살았어.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어."


할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의 표정을 읽고 싶었다. 슬픈 기분으로 말한 건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덤덤한 얘기인지가 궁금했다. 조금이라도 슬픈 얼굴이면 화제를 전환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다르다.


주간보호센터에서 봤던 아흔 살 할머니와는 확실히 다른 얼굴이었다. 뭔가 지친 얼굴도 아니었고, 슬프고 울고 싶은 표정도 아니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아흔 살 할머니의 표정이나 말은 '그만 살고 싶다'라는 의미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아흔두 살의 할머니는 그런 표정이나 말투도 아니었다. 지친 얼굴이라기보다는 어떤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있는 그대로를 말한 것 같았다. '어쩌다 보니 내가 92년이나 살았다'라는 의미로 말이다.


이럴 때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처음엔 다른 주제로 화제를 전환할까란 생각도 했었다. 근데 섭섭할 것 같았다. 내가 치매를 앓든 아니든 '오래 살았어'라는 말을 상대방이 못 들은 척 넘어가면 속이 상할 것 같았다.


나는 고민 끝에 할머니에게 말했다. 오래 사는 게 잘못도, 틀린 것도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치매를 앓는다 해도 말이다.

- 참고로 최근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가 많이 나오고 있다. 실제 효과를 보는 경우도 많고 새로운 치료제도 계속 나오는 중이라, 다른 치매들도 곧 해결이 되지 않을까란 상상을 한다.


"어르신, 요즘은 100살 넘게 사는 분들도 많아요! 몸만 건강하면 130살까지 사는 분도 있고요."

"130살?"


할머니는 내 말에 놀란 듯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아니, 어떻게 그 나이까지 살아요? 말도 안 돼."


내 말이 믿기지가 않는지 할머니는 손사래까지 치며 웃고 있었다.


"어르신. 지금처럼만 건강 유지하시면 130살이든 120살이든 사는 거 아무 문제없어요. 어떤 어르신은 100살이 넘었는데도 자전거 타고 동네도 도세요."

"100살이 넘었는데도 자전거를 탄다고요?"

"네."

"하긴 건강만 하면... 더 사는 게 문제 될 건 없지."


할머니는 내 말이 수긍이 갔는지 아까보다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나는 아흔둘인데 혼자 밥도 할 수 있고, 약도 챙겨 먹을 수 있고, 화장실도 혼자 가니까... 건강한 거죠?"


마치 가능만 하다면 더 살아도 괜찮지 않겠냐는 말 같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어르신. 지금처럼만 건강 유지하면, 130살까지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어요. "라고 말이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할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또다시 나에 관한 기억이 사라졌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근데 누가 보내서 왔다고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대화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시 내 소개를 다시 한 후, 정식으로 할머니가 사는 집안을 찬찬히 살폈다. 치매 초기인 할머니에게 도움이 될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욕실 안 텅 비어 있는 세탁기를 확인 후 부엌으로 향했다.

그 사이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게 싫었던 건지, 할머니는 워커를 끌고 오더니 식탁에 앉아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돈은 누가 내는지 등의 처음으로 돌아간 질문들이었다.


할머니가 앉아계신 식탁 옆 벽에는 큰 달력과 약달력이 걸려 있었다. 달력에는 삐뚤빼뚤한 동그라미가 날짜마다 그려져 있었는데, 할머니가 날짜와 요일을 기억하려고 직접 표시한 거였다. 하지만 확인차 물었을 때 할머니는 현재의 날짜나 요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할머니 혼자서 밥도 잘 챙겨 먹고, 약도 잘 챙겨 먹는다는 거였다. 자식들이 오지 않는 평일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는 것만 빼고는, 치매가 더 진행되는 경우만 아니라면 요양원에 갈 일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게 최고의 삶이라 생각했다.


실습 나갔던 요양원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만 들었다. 누워서 살 정도로 아프지 않고, 치매만 심각하지 않다면 좋겠다고 말이다.


사실 내게 겪은 요양원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생과 죽음이 벽을 사이에 두고 공존했고, 치매가 심한 어르신과 아닌 어르신이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느낀 요양원은 감옥 아닌 감옥이었다. 사건 사고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통제였어도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인지 문득 요양원 실습 때 봤던 할머니 한 분이 떠올랐다. 80대 중반의 치매를 앓고 있던 할머니.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이 버거워한다고 소문난 바로 A할머니가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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