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중요할지도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있습니다.
A할머니는 요보사 선생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빠가 다음에 올 거라는 말도, 요양원이 집이라는 말도 믿지 않았다.
몇 번의 대화 끝에 요보사 선생님은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는지, 오빠에게 전화를 해보겠다며 A할머니를 안심시킨 후 카운터 쪽으로 사라졌다. 화제 전환을 위한 연기였다. 당연히 전화 통화 결과를 말해주러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건 A할머니를 자극시키는 일이 될 테니까. 어쩌면 치매 특성상 방금 전 상황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요보사 선생님이 떠난 후 A할머니는 초조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봤다. 당장 저 엘리베이터만 탈 수 있다면, 친오빠와 만나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A할머니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사라진 요보사 선생님을 잊지 않고 찾았다.
왜 아직도 오지 않느냐며 화도 내다 테이블에 모여 회의하던 요보사 선생님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누구든 좋으니 친오빠가 있는 1층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요보사 선생님들은 매일 겪는 일인지 고함 속에서도 회의에 집중했다. 좋게 말하면 모른 척, 나쁘게 말하면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야 들은 얘기지만, 집에 가겠다는 어르신들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치매 어르신들의 특성에 맞게 대응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 같았다. 설득과 연기로 진정이 가능한 어르신과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한 어르신들에 맞게 말이다.
처음엔 못 들은 척하는 방식이 A할머니를 더 화나게 만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요보사 선생님들의 반응이 없자 A할머니는 이내 휠체어를 끌고 자기 병실로 가버렸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못 들은 척하는 요보사 선생님들의 태도에 상처받고 가버린 건지, 아니면 떼를 써도 집에 갈 수 없겠다는 체념에 가버린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말이다.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걸 알았는지, 회의가 끝나자 실습 담당 요보사 선생님이 다가와 슬쩍 말해준다. A할머니는 4층에서 제일 힘든 어르신이라고. 반응을 해주면 집에 보내달라는 요구가 더 강해지는 어르신이라고.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실습 담당 요보사 선생님을 따라 병실을 돌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난 후 시작되는 일과는 병실마다 어르신들의 기저귀를 케어하는 것이라고 했다.
병실은 총 10개 정도가 있었는데, 일반 병원처럼 1인실, 2인실 외에 대부분이 4인실이었다. 입소한 어르신들의 나이는 70대 초반부터 90대까지 다양했는데, 대부분의 병명은 파킨슨병, 치매 등이었다. 간간이 치매가 아닌 일반 지병으로 관리가 필요해 입소한 어르신들도 있었는데, 치매 어르신들 틈에서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요양시설은 치매 초기든 치매 말기든 다 같이 섞여서 생활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가장 먼저 들린 4인실은 와상 상태의 어르신들만 있었다. 침대가 생활 반경의 전부이고, 콧줄로 하는 식사가 전부인 상태. 대소변은 기저귀가 아니면 스스로 볼 수도 없는 상태. 와상 상태로 너무 오래 생활한 바람에 구축(관절이 굳는 현상)으로 체형 변화가 생긴 상태. 즉 요양원이 아니면 케어가 불가능한 어르신들이었다.
실습 담당 요보사 선생님은 능숙하게 기저귀 케어를 했는데, 4층에 오자마자 코를 찌르던 냄새가 이 대소변과 관련된 냄새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이론 수업 때 배운 기저귀 케어가 실제로는 2명이 팀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많지 않은 요보사 선생님들이 정해진 시간마다 기저귀 케어를 하고, 식사와 간식도 챙기고, 목욕과 병실 케어까지 한다는 건 급여에 비해 육체적/정신적으로 노동이 꽤 과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기저귀 케어를 마무리하고 다른 병실로 이동 중, 누군가의 큰 고함이 들렸다. A할머니였다.
A할머니의 언성이 높아지자 근처에 있던 요보사 선생님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갔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갔다.
A할머니는 자신의 침대 위에 앉아 사이드 레일을 흔들며 화를 내고 있었다. 화가 난 이유는 옆 침대 어르신이 자신의 보따리를 훔쳐갔기 때문. 하지만 옆 침대 어르신은 요보사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거동이나 의사소통이 힘든 분이었다.
그럼에도 A할머니는 보따리를 찾아내라며 화를 내고 또 내고 있었다. 다른 요보사 선생님들이 손길도 뿌리치면서 몸부림을 칠 정도로 말이다.
- 어쩌면 집에 보내주지 않았던 게 쌓여서 더 화를 내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때 B요보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다른 요보사 선생님들에겐 화만 내던 A할머니가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언니!"
A할머니는 B요보사 선생님을 진심으로 반가워하며 손을 잡았다. 알고 보니 A할머니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요보사 선생님이라고 했다.
B요보사 선생님은 A할머니를 금방 진정시켰다. 큰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A할머니의 하소연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다 들어주며 공감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가 아닌 옆집 친한 할머니처럼 대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걸 A할머니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고. B요보사 선생님의 이름은 기억 못 해도 얼굴만 봐도 반가움이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론 수업 때가 생각났다. 치매여도 어르신들의 감정은 살아있다는 말. 인지 문제로 장소와 시간, 기억들이 흐릿해져도 자신에게 친절한지, 진심인지,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등은 느낄 수 있다는 말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