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감정은 안다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많습니다.
내가 약속을 안 지켰다고 화를 내시면 어떡하지란 생각에 급히 A할머니에게 향했다.
하지만 다행히 A할머니는 잠들기 전 상황이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내가 처음 4층에 도착했을 때로 리셋되어 계실 뿐이었다.
그래도 A할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말을 들어주면 화내고 떼쓰는 증세가 사그라들었다. 문제는 할머니가 깨어있는 동안 전담해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단 거였다.
내가 실습하던 요양원 4층에는 31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계셨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지병, 치매의 정도도 달랐다. 어떤 어르신들은 소위 '예쁜 치매'라고 불릴 정도의 증세였고, 어떤 어르신은 A할머니처럼 의심, 망상으로 인한 분노 표출을 하거나 또는 난폭한 행위(A할머니는 아닌)를 하곤 했다. 또는 치매 말기라 요보사의 도움 없이는 식사도, 걷는 것도,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해 누워만 계시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 보통 치매 말기의 어르신들은 외딴섬처럼 행동하고, 그렇게 보인다.
고작 5일 정도의 실습이었지만, 내가 겪어본 치매의 단계 초기, 중기, 말기 중 가장 힘든 게 중기 같았다. 특히 가족들에게 가장 괴로운 단계가 중기 같았다. 왜냐하면 치매 중기의 어르신들은 의심, 망상 같은 증세가 가장 심했기 때문이다.
실습 요양원의 B할머니는 치매 중기에 해당하는 어르신이었다. 목욕 거부와 의심, 망상, 분노 등의 증세가 있었다.
- B할머니의 경우 내가 간 실습 첫날, 이미 한 달 넘게 목욕을 거부한 상태였는데, 요보사 선생님들의 주 업무 중 하나가 목욕 설득이었다.
다시 임시로 방문한 방문 요양 첫 번째 날로 돌아가면, K할머니는 부엌을 살피는 나를 보면서 이것저것 말을 거셨다. 그 사이 나에 관한 정보가 또 기억이 나지 않는지 같은 질문들을 해오셨다.
치매 초기라 반복 질문이 많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치매로 인해 매번 처음이라 느끼고 묻는 거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밥은 아침에 내가 했어."
할머니는 뭐든 혼자 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으신지, 뿌듯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할머니 말씀대로 밥솥 안에는 맛있게 생긴 잡곡밥이 포실하게 김을 내고 있었다.
- 하지만 전화받는 법, 거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 곤란해하는 경우가 잦았다. 신기하게도 치매는 평생 해온 일들, 즉 몸이 기억하는 일들은 꽤 오래 유지되곤 한다. 밭일, 집안일, 직업 등.
그러다 A할머니와 K할머니의 공통점을 어렴풋이 느꼈다. 두 분 다 혼자 있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간을 확인한 할머니는 내게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혼자 먹기 싫다는 이유였다. 처음 방문요양을 온 상태라 같이 식사를 해도 될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밥솥 안에는 할머니가 내일 아침까지 드실 세끼 정도의 양이 있었고, 냉장고 안 반찬도 넉넉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새 요보사를 구할 때까지 월수금만 방문하기로 했다. 자녀들은 주말에나 번갈아 온다고 했으니 내가 다시 올 수요일까지 반찬이나 밥이 부족해서는 안 됐다. 치매 초기라지만 갑자기 밥 하는 방법이 생각이 안 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나중에 같이 식사하기로 하고, 할머니의 점심만 챙겼다.
할머니는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식사하는 중에도 그새 또 반복 질문을 하셨다. 오늘은 며칠이야? 지금 시간은 몇 시고? 왜 왔다고? 누가 보냈는데? 등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같이 밥 먹자는 제안도 잊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점심 식사가 끝난 후, 나는 할머니의 하루 루틴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뜨거운 믹스 커피를 함께 마셨다. 그리고 집안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할머니에게 전화받는 법과 통화하는 법도 알려드렸다. 문제는 몇 분 뒤 다시 헷갈려하셨다.
3시간 뒤 방문요양 퇴근 시간.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현관 앞까지 따라오셨다. 배웅하겠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건 위험하니 문을 잠그고 안에서 배웅하라 부탁드렸다. 하지만 할머니의 배웅법은 그게 아니었는지, 손을 저으셨다.
"문 열고 배웅해야지."
"그럼 안 돼요. 그러다 또 밭에 나가시면 어떡해요?"
"안 나가. 배웅할래."
"그럼 현관문 잠근 거 보고 가야 하니까, 안에서 배웅하세요."
이런 식의 실랑이 끝에 설득된 할머니.
나는 할머니가 현관문을 잘 잠갔는지를 문을 흔들어 확인한 후, 2층 집을 내려와 마당에 주차했던 차로 향했다. 그리고 차를 돌려 마당을 빠져나오는 순간 2층 베란다에 서 있는 할머니가 보여 차를 멈췄다. 알고 보니 직접 보고 배웅하겠다고 나오신 거였다. 그것도 자식도 아닌 요보사의 퇴근을 말이다. 감사한 마음에 손을 흔들었더니, 할머니도 손을 흔들어 주신다. 그러더니 또 묻는다.
"언제 온다고?"
나는 큰 목소리로 수요일에 온다고 말한 후 다시 차를 움직였다. 마당에 심어진 큰 나무 하나를 지나쳐 할머니의 2층 집을 막 벗어나려던 순간, 할머니께서 내 차가 잘 보이는 쪽 베란다 코너에 서서 다시 손을 흔들고 계시는 걸 발견했다. 아마도 몸이 기억하는 배웅법 같았다.
그리고 이틀 뒤 수요일. 할머니 댁을 다시 방문했다.
그날은 치매란 소리 없는 비극이라는 걸, 다시 한번 체험한 날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