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치매는 살아온 기억과의 싸움

현재부터 서서히 잊혀가는 기억

by Chang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이 많습니다.




할머니는 TV 옆 액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나를 돌아보며 물으셨다.

“우리 바깥양반이 75살에 죽었어요. 그럼 지금 몇 년이나 지난 거지?”


액자 속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남편이었다.

평소 숫자에 약했던 나는 급히 암산을 시도했다. 오랜만에 머리로 숫자를 굴리려니 머릿속이 꽉 막힌 듯했다. 더듬거리며 조심스레 답했다.


“지금 어르신이 아흔둘이시니까… 할아버지는 17년 전에 돌아가셨네요.”

“세상에. 그렇게나 오래됐어요?”


말을 잇지 못한 할머니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이내 지친 얼굴로 말씀하셨다.


“나이가 드니까 기억이 자꾸 흐릿해져요. 자식들 나이도 모르겠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걱정 마시라고 얘기했다. 내 어머니도 내 나이를 헷갈려하고, 나 역시 내 나이가 가물가물할 때가 있으니 별일 아니라고. 할머니는 그 말이 재밌었는지, 내게 젊은데도 그러냐고 되묻고는 이내 미소와 함께 눈을 감으셨다.

하지만 잠시간의 정적 후 할머니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방금 전까지 했던 얘기를 또다시 처음처럼 얘기했다. 시아버지가 날마다 술을 마셔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시어머니가 밭일을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등등 그 시절의 고단했던 기억들을 말이다.


그러다 할머니는 자신의 오른손을 조심스레 내게 보여주셨다. 밭일로 울퉁불퉁해진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는 굵고 휘어 있었으며, 손끝은 거칠게 닳아 있었다.


“내가 시집가서는 매일 밭일만 했어요. 그래서 손이 이렇게 못생겨졌지.”


그러고는 내 손등을 살며시 어루만지셨다.


“젊어서 그런지 손이 참 고와요. 피부도 하얗고 부드럽고.”

“제가 만져본 어르신 손도 부드러워요.”

“에이 무슨 소리야. 밭일하느라 다 망가졌는걸요.”

“정말이에요. 같이 만져보세요. 어르신 손등이랑 제 손등.”


할머니는 머뭇거리다가, 내 손등과 본인의 손등을 번갈아 조심스레 만져보셨다.


“어때요? 똑같이 부드럽죠?”

"아니야. 아니야. 어떻게 젊은 사람과 같아."


근데 진심이었다. 할머니의 손가락들은 마디들이 휘거나 굵고, 손가락 끝들은 뭉뚱하면서도 거칠었지만 손등만큼은 진짜 부드러웠다.


나는 할머니의 힘들었던 시집살이 얘기를 더 듣다 점심을 챙겨드렸다. 그리고 샤워를 도와드린 후 시간에 맞춰 퇴근 인사를 했다. 물론 전화 거는 법, 전화받는 법을 여러 번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번에도 날 배웅하겠다고 굽은 허리로 날 따라나섰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인사를 하려던 순간, 팔을 쭉 뻗어왔다.


"저 아래 오른쪽 주황색 지붕 보여요? "


나는 할머니가 가리키는 주황색 지붕 집을 바라봤다.


"저곳에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할머니가 살아요. 내가 건강할 때는 자주 어울렸는데 요즘은 못 본 지도 오래됐지. 근데 저 할머니는 아파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매일 앉아서 밭일을 해요. 대단하지?"


할머니는 안타깝다는 듯 주황색 지붕집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자식들이 도와줄 사람을 보내주는데, 저 집은 그럴 사람이 없어요."

"왜 그럴 사람이 없어요?"

"자식들이 신경을 안 써. 나쁘죠?"


나는 할머니와 주황색 지붕집을 바라보다, 다시 퇴근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는 혼자 있는 게 싫은지 나와 더 같이 있겠다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난 시간제로 일하는 요보사였다. 결국 할머니는 내 부탁에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철컥-


"문 잘 잠겄죠?"

"으응. 근데 언제 또 온다고?"

"하루 지나고요."

"그럼 다음엔 또 언제 오고?"

"똑같아요.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그래요?"


내일이라도 당장 새로운 요보사가 뽑히면, 더는 올 일이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한 것.



사실 1화에서 언급했지만, 나는 할머니의 새 요보사가 뽑힐 때까지 임시로 일하는 중이었다. 가끔은 웹툰/웹소설 업계가 안 좋으니 투잡처럼 요보사를 할까란 생각도 했지만, 이 생각은 최근에 여러 일을 겪으면서 요보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낀 상태라 접어진 상태다. 물론 임시로 일할 기회가 있다면 하겠지만, 평생 직업으로 투잡처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끝난 상태다. 이것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마지막 연재 때 쓸 것 같다.




나는 현관문이 잠긴 걸 확인 후, 마당에 세워진 차로 향했다. 혹시 오늘도 베란다에서 날 배웅할까 싶어 사이드미러로 보자, 2층 베란다 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할머니가 베란다 난간에 기대는 걸 본 후 차 시동을 걸었다. 할머니는 또다시 묻는다. 언제 온다고? 나는 처음 들은 질문처럼 답한다. 하루 지나면 올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루가 지나서 본 할머니는 조금 더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간 것도 아닌데. 고작 48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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