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치매 엄마와의 통화를 원치 않는

엄마와 아들의 알 수 없는 속사정

by Chang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많습니다.




실습 요양원의 B할머니는 A할머니 다음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어르신이었다.


B할머니는 요양원 4층에서 싸움꾼으로 소문난 어르신이었다. 싸움의 원인은 치매로 인한 오해와 의심. 그 때문에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나 다른 어르신들은 B할머니와의 다툼을 가장 어려워했다. B할머니의 오해와 의심을 풀 방법이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실습 첫날, 출근하자마자 봤던 A할머니의 ‘집에 가겠다’는 소란과 반대로, B할머니는 평온해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실습생 눈으로 보기엔 입소한 어르신들 중 가장 건강해 보이면서, 가장 패셔니스타에 가까웠기에 치매 증세가 약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자, A할머니가 아닌 B할머니의 증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 B할머니는 요양원 4층의 패셔니스타였다. 예쁜 파마에, 눈썹 문신도 예쁘게 된, 건강하고 멋지게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치매로 인한 불안 장애와 분노 장애를 앓고 있었으며, 세수는 해도목욕은 거부하는 증세도 있었다. 당시엔 두 달째 목욕 거부 중이었는데, 이유는 딱 하나였다. 찜질방 같은 대중목욕탕에 가서 직접 하겠다는 것. 요양원의 샤워실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하는 게 아닌, 평범하게 목욕탕에 가서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평소처럼, 늘 해왔던 것처럼 말이다.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B할머니는 (가) 병실로 향했다. 이유를 알 리 없는 내가 멀뚱히 서 있자, 다른 어르신의 식사를 돕던 요보사 선생님께서 내게 B할머니를 원래 병실인 (나)로 모셔 달라고 부탁해 왔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B할머니가 들어간 (가) 병실로 들어가자, B할머니가 창가 옆 침대 위 어르신에게 화를 내는 게 보였다.


대화 내용은 자신의 침대에 왜 누워 있냐는 분노.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한 달 전 병실을 옮겼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해서 생기는 잦은 해프닝이라고 했다.


사실 이론으로 배우긴 했어도, 치매라는 병이 낯설어서 그런지 B할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분명 점심 전까지만 해도 원래 쓰던 (나) 병실과 홀을 잘 오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식사 후, 한 달간의 기억이 지워졌다.


그 말은 병실을 옮긴 한 달 동안 툭하면 기억에 구멍이 난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치매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B할머니 입장에선, 공백이 생겨버린 한 달간의 기억 때문에 바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내는 거였고.


나는 일단 화를 내는 B할머니를 달래기 시작했다.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B할머니에게 귀가 솔깃해질 만한 이야기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르신. 며칠 전, 해가 잘 드는 병실로 이사 가셨어요. 제가 거기로 안내해 드릴게요.”

“내가?”


B할머니는 쉽게 믿지 못했다. 자신의 기억엔 없으니 내 말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옮겨간 병실이 지금 병실보다 훨씬 좋고, 나무에 꽃이 핀 것까지 보인다고 말하자 B할머니는 관심을 보이며 (나) 병실로 이동했다.


옮겨간 (나) 병실에 들어와 B할머니를 앉힌 후, 나는 해가 잘 들어오는 창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렇게 해가 잘 들어오니 옮긴 거라고. 내 말에 B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가 더 좋아서 옮긴 게 맞는 것 같다고 수긍하기 시작했다.


문득, 요양보호사에게 필요한 재능 중 하나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유는 단순하다. 치매 어르신들의 경우,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기억에 큰 구멍, 즉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공백으로 인해 당황하고 화내는 어르신들에게, 그 틈을 메워줄 기분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게 주된 일처럼 보였다.


하여간 창가의 햇살, 나무의 꽃, 산에 자라는 풀과 나무의 싹을 이야기하다 보니 B할머니는 마음이 수그러든 듯 병실을 옮기길 잘했다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안감이 풀렸는지 내게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능력 좋은 아들이었다는 말. 엄마에게 잘했던 착한 아들이었다는 말. 좋은 회사에서 한 달 만에 실력을 인정받은 잘난 아들이었다는 말 등등.


하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한 달 넘게 다섯 번의 실습을 하는 동안, B할머니의 착하고 능력 좋은 아들은 요양원에 면회를 온 적이 없다고 했다.

- 참고로 요양원은 자녀들의 면회 횟수에 따라 어르신들의 케어가 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면회가 잦은, 즉 자녀가 신경 쓰는 어르신을 더 신경 쓰는 느낌이었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마지막 실습 날, 치매 증세가 더 심해진 탓인지 B할머니는 처음으로 내게 아들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그게 치매로 인한 의심 때문에 생긴 흉인지, 그동안 숨겨왔던 진실인지는 알 방법이 없었지만, B할머니는 나쁜 아들이라고 화내고 또 화를 냈다. 이유는 자신이 힘들게 모아 산 집을 아들이 팔아먹으려고 해서였다.


B할머니는 아들과 통화를 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데스크에 있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 말하니, 통화가 불가능하니 잘 설득해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답변 예시는 다음과 같았다. 아들이 근무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것. 물론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요보사 선생님 말로는, 아들이 전화 통화를 원치 않아서 전화 연결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게 보호자인 아들의 뜻이라고. 우리는 그 뜻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이다.


뭐랄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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