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이야기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많습니다.
B할머니와의 통화를 원치 않는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속사정을 모르니 누구의 잘못이라 판단할 수도 없었다. 내가 잘못을 판단할 이유나 위치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저 엄마와의 통화를 거부할 정도로 아들에게 속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B할머니의 말대로 아들이 재산을 탐해서 연을 끊고도 치매로 그 기억을 잊고 아들에게 연락하는 걸 수도 있었다. 어쩌면 너무 잦은 연락과 의심/분노 장애로 아들이 힘든 나머지 그런 결정을 했거나.
아들의 통화 거부 요청을 알리 없는 B할머니는 요보사 선생님들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과의 통화를 막는다는 이유였다. 요보사 선생님들은 겨우겨우 달래 가며 병실로 모셨지만, B할머니는 까맣게 잊고 다시 홀로 나와 아들과 통화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또다시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아들과 자신의 사이를 갈라놓는다며 심한 욕설과 분노를 표출하는 B할머니.
나는 B할머니의 반복되는 분노 장애를 보며,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이 정신적으로 힘든 직업이란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내가 실습으로 갔던 주간보호센터는 치매 증세가 심각한 어르신들이 없었다. 거의 치매 초기거나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 없는 치매 어르신들이라, 정신적으로 힘들 일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요양원을 달랐다. 치매 어르신들의 여러 감정 장애와 행동 장애 문제들이 수시로 발생했다. 요보사 선생님들은 어르신들의 분노나 오해, 의심을 낮추기 위해 위해 웃는 얼굴로 애를 써야 했고. 일종의 감정 노동을 하는 직업이었다.
그렇게 30분간 이어진 B할머니의 분노.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를 가둔 게 아들인 것 같다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속사정을 알 수는 없었다. 갑자기 정신이 든 B할머니의 진실일지, 보호자의 말이 진짜일지 알 방법도 없었다.
- 사실 치매 어르신이 한 말을 전부 거짓으로 치부하는 건 위험하다. 순간순간 맑아진 정신으로 자신의 과거나 숨겨진 얘기를 꺼내는 게 치매 어르신들의 특징 중 하나라서 그렇다.
문득 실습 4일 차 때 있었던 C할아버지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내가 간 실습 요양원은 남녀 어르신들이 병실을 구분해 쓰고 있었다. 오른쪽 병실이 남자 병실이라면, 왼쪽은 여자 병실이었다.
C할아버지는 4층에서 가장 젊어 보이는 60 중반의 어르신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면, 장년층 정도로 보이는 외형이기도 했다. 그의 병명은 알츠하이머. 평범한 의사소통은 어려웠고,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나 걷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치매적 증세는 눈에 띄지 않는 어르신이었다. 다른 치매 어르신들처럼 싸우는 것도 아니었고, 욕을 하거나 집에 가겠다는 소동도 없었다.
그저 주변에 큰 관심 없이 누군가와의 교류나 소통을 원하지 않는지, 외딴섬처럼 홀 구석에 휠체어를 놓은 후 정지 화면처럼 멈춰있는 게 C할아버지의 일과처였다.
간혹 요보사 선생님이나 내게 말을 걸 때도 있었지만, 거의 짧은 문장이나 단어로만 감정을 표현하는 정도였다. 예를 들면 싫은 것, 좋은 것,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등이었다. 그렇다고 잦은 감정 표현도 아니었다. 어떤 실습날엔 C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퇴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습 4일째 되는 날은 달랐다. 저녁 식사 전 C할아버지가 날 불렀다.
"어르신,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방금 전까지 여기 있던 여자 어디 갔어?"
C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들은 긴 문장이자, 처음으로 마주한 눈 맞춤이었다.
"여자요?"
"내 아내. 방금까지 여기 있었잖아."
무슨 상황인지 몰라 머뭇거리자, 옆에 있던 F요보사 선생님이 슬쩍 말해준다. 아내를 찾아달라는 부탁이라고. 보통은 요보사 선생님을 아내로 착각해서 찾을 때가 있다고 했다. 상황 설명 끝낸 F요보사 선생님은 곧장 C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했다.
"사모님 집에 가셨어요. 내일 오신다고."
"내일 온다고?"
C할아버지는 못 믿겠단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럼 안 오겠네. 그 여자가 날 여기에 버렸으니까?”
F요보사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C할아버지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C할아버지의 아내는 입소한 지 10개월이 넘도록 면회 한 번, 전화 한 통 온 적이 없다고 했다. 어쩌면 그런 분노 때문에 종종 정신이 맑아져서 아내를 찾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해봤다. 역시 실제로 버린 건지, 다른 사정이 있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막 근처로 온 G요보사 선생님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며 내게 말했다.
“재혼해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죠. 어르신이 저렇게 젊으니, 아내분은 얼마나 젊겠어요. 젊은 나이에 치매 남편 수발하다 죽기보다는 요양원에 맡기고, 산 사람이라도 즐겁게 살면 좋지 않겠어요?”
뭔가 비관적이면서 현실적인 말이었다.
산 사람이라도 즐겁게 살면 좋겠다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요양원에 내 가족을 내 손으로 입소시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아직 국내 요양원 인식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버렸다’란 죄책감을 갖는 일도 허다했다. 아마도 요양원에 가면 상태가 나빠진다 거나, 죽어서 나온다라는 말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요양원은 필수다.
문제 증세가 있는 치매 어르신을 자녀나 배우자가 집에서 홀로 돌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요양보호사나 간호사, 의사조차도 벅차게 만드는 게 치매라는 병이니까 말이다.
물론 폐쇄적 분위기의 요양원도 조금씩 변하고는 있다. ‘가두는 요양’에서 일본과 같은 ‘타운식 요양’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치매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가 생긴다면, 요양원은 더 이상 ‘죽음을 기다리는 갇힌 장소’로 인식되지 않을 거다. 그저 다른 곳으로 이사와 평범하게 살아가는 느낌으로 치매 치료를 받고 관리를 받을 테니까 말이다. 그 사이 치매 치료제가 나올 수도 있고.
물론 아직은 법이 따라가질 않아 실버타운/시니어 하우스로 사기를 치는 일이 생긴다는 게 문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