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치매란 참 나쁜 병

더 나빠지지 않기를

by Chang

이 글은 등장 어르신들의 정보 보호를 위한 각색이 많습니다.





48시간이 지난 금요일 아침.
K 할머니에게 가는 도중 센터 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요보사를 구했으니 임시 방문 요양은 오늘까지만 해주면 될 것 같다고.


다행이었다.

처음 임시로 이 일을 제안받았을 때, K 할머니가 계시는 지역의 교통편이 좋지 않아 요보사가 잘 구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내가 임시로 일하는 동안 구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수금만 임시로 오는 나보다는 5일 내내 할머니를 꾸준히 케어할 수 있는 요보사가 훨씬 더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맞다. 어제 보호자께서 홈캠을 설치했다고 하네요. 참고하세요."


나는 알겠다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운전해서 가는 동안 '홈캠이 설치됐다'는 말에 여러 가지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할머니에게 안전한 환경이 조성돼서 다행이라는 것. 즉 여건상 같이 살 수 없어 주말에만 오는 자녀들 입장에선 요보사가 없는 나머지 시간의 할머니를 살피기엔, 이 방법이 가장 좋아 보여서였다. 전화받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 통화가 어려울 때, 홈캠을 통해 할머니의 상태를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할머니가 자기도 모르게 습관처럼 밭에 나가 일하는 걸 알아채기 위한 방법으로 말이다. 물론 어린이집의 CCTV나 요양원의 CCTV처럼 보호자들이 나의 행동을 지켜보다 오해라도 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보호자의 입장에선 이해가 간다. 나라도 그럴 테니까..


나는 외곽의 공장 지대를 지나 할머니가 사는 작은 마을 입구로 핸들을 돌렸다. 차선 구분 표시도, 아스팔트도 없는 옛길을 달리다 보니 올 때마다 마주치는 70대 할머니가 보였다. 그녀는 길가 옆 작은 땅을 텃밭처럼 일구고 있었는데, 매번 내가 지나가는 시간대에 일을 하고 있었다.


첫날 K 할머니를 만나기 전에는 그녀를 텃밭을 가꾸는 평범한 동네 어르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K 할머니를 만난 직후에는 어쩌면 그녀도 치매 초기라, 자기도 모르게 텃밭을 일구고 있는 건 아닐까란 의문으로 바라보게 됐다.
— 아니라면 무척 실례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도착한 K 할머니 집.
내가 길가의 할머니를 보고 생각했던 게 문제였던 건지, K 할머니가 또 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이틀 전 목욕 후 골라 입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말이다.


아침부터 햇빛이 뜨거운 날이었다. 언제부터 밭일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탈수나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는 날이었다. 나는 마당에 급하게 차를 주차한 후 할머니가 계신 텃밭으로 뛰었다.


텃밭 입구에 도착하자 처음 보는 낡은 보행기가 보였다. 아마도 치매가 걸리기 전, 혹은 허리가 굽어 걷기 힘들어지기 전 동네 마실을 함께 다니던 보행기 같았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할머니에게 다가가 인사부터 했다.


"어르신. 혼자 계실 땐 밭일 안 하기로 하셨잖아요? 땀 많이 흘리면 쓰러져요."


할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 곧 허허거리며 웃었다. 아마도 내가 말을 건 순간 정신이 든 느낌이었다.


"...내가 왜 풀을 뽑고 있었죠? 자식들이 하지 말랬는데... 근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래도 세 번째라 그런지, 할머니께서는 날 익숙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을 못 하시니 또다시 내 소개를 한 후 할머니를 모시고 2층으로 향했다. 근데 도대체 언제부터 풀을 뽑고 있었던 건지, 땀에 젖어도 너무 흠뻑 젖어 있었다.


가끔씩. 아니, 너무나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치매란 참 나쁜 병이다. 현재나 가까운 기억은 죽어라 잊게 만들면서, 과거의 기억은 몸이 기억하게라도 해서 움직이게 만든다. 차라리 70년 넘게 할머니를 고생시켰던 밭일을 잊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 아흔둘의 할머니를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까라는 찹찹한 기분이 들었다.


깜빡 잊고 밭일을 나왔다며, 자신이 황당하다며 계속 웃는 할머니. 뭐랄까, 입은 웃고 있지만 표정은 납득되지 않는(기억나지 않는) 상황 때문인지 복잡해 보였다. 이번에도 첫 번째 날처럼 안심을 시켜야 할 것 같아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밤에 비가 온다고 해서 밭이 걱정됐나 봐요."
"밤에 비 온다고 했어요?"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그날은 해도 쨍쨍하고 하늘도 푸른 날이었다. 밤에 비가 온다는 예보도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안심하길 원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 내가 비가 올까 봐 나왔었나?"
"네. 네. 고추랑 파가 잘못될까 봐 걱정돼서 나오셨나 봐요. 몸이 습관이 돼서."
"그래. 그랬네. 근데 더는 밭일을 못 하겠어. 너무 힘들어."


할머니는 정신을 차린 후 밭일로 힘들었던 고통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모양이었다. 일단 집에 들어와 할머니를 소파에 앉힌 후, 탈수증을 막기 위해 시원한 물이랑 두유부터 마시게 했다. 그 사이 내가 할 일은 할머니가 아침을 잘 드셨는지, 약도 잘 챙겨 드셨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부엌에 들어가자 깨끗하게 말라 있는 싱크대가 보였다. 이상했다. 밥솥도 전원이 빠져 있고, 밥솥 안의 밥도 당연히 없다. 신기한 건 밥솥 옆 전기포트 앞에 먹으려다 만 커피잔이 놓여 있다는 거였다. 평소 할머니의 루틴은 밥을 먹고 약을 먹은 다음, 커피를 마신다. 근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려다 잊고 밭에 나간 건지, 아니면 밥을 먹었다 착각하고 커피를 마시려다 밭에 나간 건지, 또는 어젯밤의 흔적일지 알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약 달력을 살피자 오늘 먹어야 할 아침약도 그대로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밭일을 한 걸까. 고통을 호소하고 땀에 흠뻑 젖을 정도인데... 도대체 언제부터.


사실 이틀 전만 해도 할머니는 밥도, 먹어야 할 약도 스스로 잘 챙겨 드실 수 있는 상태였다. 근데 이제는 그게 안 되는 상황처럼 보였다. 혹시 치매가 조금 더 진행된 게 아닐까란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할머니에게 뉴케어와 아침약을 드시게 한 후, 방문 요양이 끝나기 전에 점심을 챙겨 드렸다. 아침약과 점심약의 시간차를 위해서였다. 그렇게 마지막 방문 요양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 할머니는 2층 베란다에 나와 또 배웅을 해주셨다. 언제 올 거냐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차마 마지막이라고 말할 수 없어 "다음 주에 보자"라고 말한 후 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의 치매가 더 진전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면서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요양원 실습 때 봤던 B 할머니 생각이 났다. 친오빠와 집에 가겠다던 A 할머니와 달리, 자신을 요양원에 버렸다고 믿는 아들에 대한 분노와 습관처럼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던 B 할머니가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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