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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운 Apr 14. 2023

배만 채우지 말고 맛을 느껴보아

가장 필수적인 행복 하나를 망각한 친구에게 


내 친구 K양은 한때 늘 먹방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남이 먹고 있는 걸 왜 쳐다보고 있냐'

'뭐가 재미있는지 도무지 공감하지를 못하겠다.'

'저렇게 먹으면 일찍 죽지 않을까?'

'맛집을 탐방한다니, 시간이 많은가 봐.'

등등의 말을 중얼중얼 대며 말이다.


이러한 K양의 식습관이나 식사 양식은 어땠을까? 그녀는 일명 소식좌라고 불리는 유형에 속했다. 항상 입이 짧아서 그녀의 남자 친구는 뷔페에 같이 가는 날은 2인분 가격을 내고 혼밥 하는 기분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으니까. 편식은 크게 하지 않지만 급하고 빠르게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있고, 물론 음식이 맛있으면 좋지만 맛없어도 그럭저럭 먹는 편이다.


K는 함께 식사를 갈 때마다 메뉴에서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옵션을 재빠르게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음식 사진은 내가 찍으니까 덩달아 찍기는 한다. 그런 다음 그녀는 맛을 보거나 맛을 음미하는 데 별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른 식사를 해치우고 다른 중요한 것에 몰두하고 싶어 하는, 그러니까 배는 채우기만 하면 된다는 가치관 그 자체였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정말로 유명한 미슐랭 음식점에 가서 식사하자고 하면 같이 가줄 거야?"

내가 언젠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론 한 번씩 그런 곳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다지 큰돈을 들이면서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정말로 그녀에게 식사는 단지 살기 위한 수단인 건지, 자기는 적당한 메뉴로 배를 채울 만큼 먹으면 된 거지 음식의 맛이나 식당의 퀄리티에 대해 깊이 따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랬던 오랜 시간들이 지나고... K양이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사뭇 다르다고 느낀 것은 정말 얼마안 된 일이다. 정말이지 볼 때마다 정말 놀랍지 아니할 수가 없다. 짐작컨대 무언가로 인해 혹은 누군가로 인해 무언갈 깨우친 모습이었다. 같이 식당을 고를 때는 찐맛집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고, 메뉴를 고를 때는 이 집에서 가장 핫한 것이 뭔지를 종업원에게 묻기도 한다. 음식이 나오면 '와~맛있겠다!' 하며 리액션까지 보이고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사진을 정성껏 찍는 모습이 꼭 다른 사람 같았다. 


"나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살았지?" 

"어느 날 내가 정말 존경하는 교수님과 식사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좋아하는 식당과 음식 이야기를 쭉 하시면서 너무 즐거워하시는 거야." 

"갑자기 먹는 것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없고 할 말이 없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더라고." 

"그때 깨달았지! 음식은 단순히 음식 자체가 아니다는 뭐 그런 거?!"

...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K양에게는 스스로의 직업윤리와 목표에 대한 헌신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 것인지에 대해 느껴볼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존했던 공허함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눴다. 진정으로 맛있는 식사를 음미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고, 삶의 가장 단순한 즐거움 중 하나를 부정하고 있었음을. 큰 행복이 생각처럼 다가오지 않을 때 약해지는 내면을 작은 행복들이 탄력적으로 변화시켜 줄 수 있단 놀라운 깨달음에 대해서... 그리고 '나 또한 놓치고 있는 행복이 있지는 않을까'란 생각에 한차례 자기 계발을 가지는 느낌도 들었다. 


이제 그녀에게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존재, 먹어 처리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고 다른 맛과 질감을 경험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  삶의 가장 단순하고도 반복되는 즐거움, 데일리 기본 옵션인 행복을 알아챈 훌륭한 내 친구. 다음에 만나면 아직 가보지 못한 성수동 맛집 데이트를 냉큼 요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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