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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Dec 12. 2020

052. 연필에 대한 입장

  마감을 끝낸 날이나 다음 날, 즉, 의무를 끝내고 마음이 가벼운 날에는 옆 건물 1층의 카페에 가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백색소음과 커피 향에 잠겨 책이나 음악, 공상, 창밖 풍경을 곁들이는 그 서너 시간이 내게는 짧지만 소중한 치유의 순간이었는데, 세태가 이렇다 보니 꺼려지고 피하게 되는 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일상이었는데 이상이 되어버린. 벌써 1년인데, 하루 확진자가 거의 1,000명에 육박한다. 옆 건물 1층 카페는 지난가을 리모델링을 해서 분위기가 산뜻하고 깔끔하게 바뀌었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결국 오늘도 집에서 분위기 냈다. 커피와 책과 음악과 공상과 창밖 풍경은 집에도 있으니까. 김지승 작가의 <아무튼, 연필>을 읽었는데, 연필에 대해 이렇게 근사한 기억이 있다는 데에 작가가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연필에 대한 심상들을 하나씩 소환해봤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난 연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내 인생에서 필기구로 연필을 주로 썼던 건 국민학생 때 잠시뿐이고, 초등학생으로 바뀔 무렵에는 샤프로 갈아탔다. 그마저도 중학생 이후로는 볼펜만 고수했다. 특별한 사정이 아니고서는 연필을 쓰지 않았고, 꼭 연필을 써야 하는 특별한 사정이라는 게 자주 있지는 않아서 지금도 내 소유의 연필은 한 자루도 없다.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고 단 몇 년간만 사용했던 연필. 명품 연필이라면 얘기가 달랐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 문방구에서 한 다스(표준어 : 한 타)씩 사서 쓰던 연필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HB, 2B, 4B라고 쓰인 제 역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것도 많고, 어떤 건 연필이라는 아이덴티티마저 저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필기감이 좋지 않기도 했다. (그 당시에 연필을 고르는 기준은 필기감이나 사용감보다는 당연히 연필의 형태와 문양. 난 육각형보다는 원형을, 그중에서 나선무늬가 있는 걸 좋아했는데 데구루루 굴러갈 때 연필이 주는 착시가 좋았다. 마치 옵아트를 보는 것 같고, 그래서.) 아무리 꾹꾹 눌러써도 희미한 흔적만 남기는 연필도 있는가 하면, 글씨를 써놓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손끝과 종이에 덕지덕지 묻을 만큼 뭉개지는 것도 있다. 후자의 것은 필통 안쪽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연필을 깎으면서 피를 많이 봤다. 연필깎이가 존재했음에도 어머니는 내게 문구용 칼로 연필을 깎는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칼질이 서툴다 보니 많이 다쳤다. 그래도 칼로 연필을 깎는 건 샤파 연필깎이로 순식간에 드르륵 모양을 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즐거움을 주었는데, '방망이 깎는 노인'도 아니면서 깎고 깎고 또 깎아서 결국 버리는 부분이 더 많아지는 듯한 기분은 그냥 기분 탓만은 아닐 거다.

  어쨌든 연필은 날카로운 심을 쓰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금세 무뎌졌고, 그만큼 연필 길이는 쉬이 짧아졌다. 어떤 연필심은 충격에 취약해 곧잘 부러지기도 했다. 몽당연필의 키를 늘리려고 모나미 볼펜 자루에 끼워서 쓰는 건 괜히 필기하는 흥이 나지 않았다. 상황과 여건이 되자 바로 샤프로 갈아탄 건 아마 이 이유 때문일 거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필의 가장 큰 단점은 지울 수 있다는 거다. 영원히 남겨두고 싶은 글귀를 쓰기에 연필은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지워지느냐? 그것도 아니다. 지우개로 지워도 종이에는 필압이 남는다. 연필만큼 문제아는 지우개다. 연필 꼬다리에 붙은 지우개는 지우개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제 기능을 못한다. 그냥 고무를 지우개라는 이름을 달고 팔기도 한다. 아직까지 기억나는 건 분명 1993년 태생이었을 꿈돌이 지우개. 내겐 연필 끄트머리에 끼 워쓸 수 있는 노란색 꿈돌이 지우개와 분홍색 꿈순이 지우개가 있었는데(노란색이 꿈돌이인 건 확실한데 분홍색은 뭐지? 설마 꿈순이인가? 싶은 마음에 검색해봤더니 혹시가 역시였네. 꿈돌이가 뉴트로의 열풍을 타고 요새 부흥을 꾀하고 있는 모양이다.) 둘 다 더럽게도 안 지워졌다. 꿈돌이 머리로 공책을 박박 문질러대면 글씨가 지워지기 전에 종이가 너덜너덜해지다 찢어지고 마는 거다. 결국 다 못쓰고 머리 몸통 분리해서 가지고 놀다가 버린 기억. 

  연필은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어려웠다. 견출지에 이름을 써서 붙인 뒤 스카치테이프로 한 번 더 고정한 게 아니라면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공공재가 된다. 줍는 사람이 임자. 받을 생각 하지 말고 빌려줘야 하고 훔쳐 쓰는 일도 비일비재. 지우개는 '지우개 따먹기'라는 소유권 이전을 위한 공식절차라도 있지. 

  써 놓고 보니 뭐 이리 구구절절. 그래도 연필의 좋은 점은 버려지는 부분이 없다는 데에 있겠다. 이처럼 남김 없는 볼펜은 없을까. 심을 교체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고서야 볼펜은 수명이 다 한 후에 대체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되고 마는데, 그래서 난 몇 년 전부터 주로 만년필을 쓴다. 필통에 만년필 한 자루와 저렴한 볼펜 한 두 자루를 넣어 다니는데, 볼펜은 대여용이다. 외부 미팅 때 내게 펜을 빌려달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마 글을 쓰는 직업 때문에 응당 여분의 볼펜을 가지고 다닐 거라고 지레짐작하기 때문일 텐데,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잠깐이라도 타인에게 내 만년필을 맡기고 싶지는 않아서. 사실 만년필은 빌리고 빌려주기에는 부담스러운 물건이다. 그래서 그런 부담이 없는 볼펜을 몇 자루 가지고 다니는데, 그렇다고 안 돌려줘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편의점에서 산 몇 백 원짜리 bic 볼펜이라도. 

    

  나는 이 동네 대표 마녀가 반지하에서 연필을 빗자루 대신 쥐고 박완서와 오정희의 글을 마법서처럼 중얼중얼 읽는 모습을 상상했다. 현대판 마녀는 재판이나 화형보다 매일 밤 고독사를 두려워하겠지. 

  김지승 「아무튼, 연필」


  현대판 작가에게는 연필이나 펜 대신에 키보드를 빌려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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