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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Mar 16. 2020

041. 절교(과거완료)

  요즘 나는 너의 표정이 궁금하다. 


  이사를 결정하고 작년 이맘때쯤 이곳으로 터를 옮겼을 때 가장 아쉬워했던 사람. 각자의 집에서 30분이면 딱 중간지점이 동교동이라 좋았었다며, 이제는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두 배가 넘는 시간을 들여야 만날 수 있다며,  왜 자기 동네로 이사 오지 않느냐며, 어쩜 그리 먼 곳으로 가냐며 그렇게 투덜대던 사람. 그래도 기꺼이 이곳까지 날 보러 내처 달려와주곤 했던 사람. 그리고 자기 없다고 외롭고 쓸쓸해하지 말라며 나서서 동네 친구까지 만들어 준 사람, 너. 요즘 나는 너의 표정이 궁금하다. 


  요새 온 매체에서 널 다루고, 모든 사람들의 입방아에 네가 오르내려. 아흔이 다 된 병든 노인을 불사의 신이라고 믿으니 바보 아니냐고, 떳떳하게 드러내지도 못하는 믿음에 가족도 학교도 회사도 버리니 병신 아니냐고, 전국 방방곡곡에 해와 악을 퍼트리니 다 잡아다 처단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너 욕 많이 먹더라. 네가 장수한다면 그건 네가 믿는 신 때문이 아니라, 온 국민으로부터 양껏 받은 욕 때문이야. 물론 나도 십시일반 했다. 


  작년 추석에 고향집 방바닥에 눌어붙어 심심함에 하릴없이 휴대폰만 만지작대고 있을 때, 누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이비에 당했다'며 게시글을 올려놨더라고. 그 글을 읽고 나니까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져서 이것저것 한참을 찾아봤어. 네가 소개해 준 그 동네 친구 말이야, 날 그렇게나 좋아해 주고 친언니처럼 살갑고 따뜻해서 부쩍 자주 만났거든. 근데 그 친구가 그 무렵에 내게 월화목금 일주일에 네 번, 오전오후 택해서 하루에 세 시간씩 하는 강의가 있는데 너무 유익하니까 한 번 들어보라고 자꾸 권유하더라고. 너도 추천했잖아, 그거 좋았다며. 난 사실 마지막 회사에서 너무 치인 탓에 강의니 뭐니에 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사실 관심도 없어서 어쨌든 거절할 생각이었거든. 근데 그게 그 게시글 속 익명의 피해자가 걸려든 덫과 놀랍도록 똑같더라. 재작년에 놀러 갔던 너희 교회도 검색해 봤다. 부활절 달걀 받으러 크리스마스 연극 보러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쫄래쫄래 따라간 세밑의 그 교회, 찾아보니까 위장교회더라. 어쩜 그렇게 티가 안 났니. '도를 아십니까'나 '얼굴에 복이...', '조상님께 제사를...' 이런 부류가 아니니까 깜빡 속았잖아. 


  급속도로 친해진 건 2년이 채 안 됐지만 그래도 알고 지낸 지 10년인데, 상상도 못 했어. 사이비에 빠질 사람이 있고 아닐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넌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긴 내가 가진 경험의 조각들로 섣불리 너의 전부를 판단할 순 없지. 다만 여태껏 내가 몰랐던 너의 일부, 너의 어떤 면모를 보게 되었을 때 내가 어떻게 너를 대할 것이냐는 온전히 내 몫이니까 당연히 끊을 절絶, 사귈 교交. 너와의 사귐을 끊으면서 한동안 허탈감, 배신감, 슬픔, 분노, 두려움으로 속을 좀 앓았어. 두 번이나 날 찾아온 낯선 사람들, 우리 집 주소 알려준 것도 혹시 너니?  


  세상이 이토록 시끌시끌한 요즘, 너도 허탈감, 배신감, 슬픔, 분노, 두려움, 그 비슷한 것들로 속앓이를 하고 있니. 그렇다면 그 감정의 날이 날카롭게 향하는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네가 믿는 신인지 너 자신인지 무지몽매한 세상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국민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너의 우상, 발가벗겨지는 네 믿음의 실체,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난과 손가락질, 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을 순 없다고 생각해. 그것 역시 나의 착각일까. 널 두 번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요즘 나는 너의 표정이 궁금하다. 조금은 보복적이고 가학적인 마음으로.



- '032. 절교(진행 중)'에 이어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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